사람이 자신의 깊은 슬픔을 표현하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가장 낮은 단계의 사람은 운다.
두 번째 단계의 사람은 침묵한다.
가장 높은 단계의 사람은 자신의 슬픔을 어떻게 노래로 바꾸는가를 안다. (Seah Sarfe Kodesh, vol. 2, p.92, 318), (114쪽)
위 문장은 헤셸의 말이 아니라 그가 인용한 거다.
출처는 위 괄호 안의 그것이다.
헤셸은 저 말을 인용하면서 이르기를 ‘참다운 기도는 노래다.’ 하고 말했다.
그의 진술은 옳다. 찬송보다 더 귀한 기도는 없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를 생각해보면 된다.
찬송가를 부를 때 언어와 음악이 그 사람의 영혼을 사로잡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찬송가를 부를 때
자기의 사적인 말이 개입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찬송가의 멜로디를 따라야 하기에 철저하게 자기를 절제하게 된다.
찬송가 가사를 자기 마음대로 개사하거나
멜로디를 제 멋대로 다르게 부르면 찬송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기도는 예배와 함께 드려지는 게 최선이다.
아니면 좋은 기도문을 읽는 것도 괜찮다.
자기의 생각을 기도문에 묶어둘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기독교인들은 스트레스를 풀듯이 자유자재로 기도를 드리는 걸 즐긴다.
산에 올라가 철야기도를 하면서 나무뿌리를 뽑는다고도 말한다.
그게 아니다. 기도 역시 전문적인 성악이나 연주처럼 주어진 길이 있다.
그 길을 아무나 낼 수는 없다.
찬송가의 내용과 음률을 따라가는 것부터 기도 배우기를 시작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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