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창으로 가슴을 푸욱 찌를 때
제가 전에 섬기던 목사님께서 항상 강조하신 말씀이 있다.
목사는 누군가가 창으로 가슴을 푸욱 찌를 때
그때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억울하다고 변명하거나 아프고 힘들다고
그 창을 뽑아서는 안 된다는 거다.
그 창을 부여잡고 십자가를 생각하며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 창을 십자가의 사랑으로 녹여내면
결국 하나님께서 문제를 풀어주신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목사가 승리하는 비결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내 모습을 보면 참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만 힘들어도 나도 모르게 원망이 나온다.
속이 상해서 잠 못 이루기도 한다.
그것은 내가 십자가 앞에 온전히 죽지 못하고
내 욕심이, 내 뜻이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안두익 목사의 ‘어떤 삶이 행복한 삶입니까’에서-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고백합니다.
우리가 죽는다는 것은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는 것입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신을 십자가에서 버리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믿음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추구해야 할 존재방식입니다.
우리의 영성은 ‘자아를 얼마나 죽였는가?’입니다.
아무리 은혜를 받고, 스스로 은사를 가졌다 할지라도
아직도 내 안에 혈기가 죽지 않고,
내 고집과 내 주장이 살아있다면 더 엎드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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