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총들을 다시 거두시는 방식일 뿐”
인권유린에 대한 원인이 흔히 특정 개인 혹은 특정 사회나 시민 사회에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오히려 인권유린의 원인 뒤에는 가장 객관적 시각을 가졌다고 하는 과학자들의 책임도 크다.
인간 존재 고유성 재평가 되어야
인간을 진화론의 입장에서 이해할 때, 인간의 폭력성을 다른 생명체나 동물들의 진화라는 입장에서 이해하는 이상 인권유린은 과학적 정당성을 얻게 된다. 초식동물과 육식동물과의 관계에 대한 진화론적인 정확한 이해고리가 완성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폭력의 기원에 관한 가설들이나 학설들이 과학적 객관성을 가진 것으로 인정되면 될수록 대 사회로부터 그 폭력을 막을 길이 없을 것이다.
과거 히틀러 시대에 동물들과 근원적으로 다른 인간의 고유성에 대한 발굴을 가지고 이론으로 혹은 철학적 인간학으로 저항하였던 철학자들이나 과학자들이 사회에 더 많은 유익을 주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더구나 인간의 모든 활동에는 기본적 한계로서 인간 인자들이 있다는 사실들이 실정법에 반영이 되어 있지 않다는 것도 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 즉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 문제가 문제로 발견될 때부터 기본적으로 의식이 있는 곳에는 항상 지향성 자체의 오류와 판명성 오류 및 뇌로 향하는 정보 방향의 오류가 있다는 사실이 크게 간과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보들이 뇌의 마지막 피질의 네 번째 층에 뿌려줌으로써 세계를 가장 아름답게 보고 듣는 화면 뒤에 어떤 세계가 있는지를 모르고 인식활동이나 언어생활을 하기 전에 이런 기본적인 오류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이미 인권유린에 대한 책임이 있다.
기독교 입장에서 보면 모두가 죄인이라는 사실이 범죄자들의 사회적 지위나 범죄의 사회적 인식 정도와 상관 없이 근원적으로 범죄자들을 절대적으로 정죄할 수 없는 오래된 근거가 되고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더구나 뇌 과학의 근거에 의해서도 의도행위만을 가지고 범죄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고자 하는 첫 계기는 뇌의 어떤 특정 부위의 자극에 의해서도 생긴다는 사실도 잘 증명이 되었고 어떤 의도와 의지가 일어나는 첫 계기 이 전에 수 백 밀리 초 앞서서 뇌는 어떤 의지와 관련된 기능들을 하는 것으로 증명이 되었다.
의지란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할 형식이라기보다 주는 자가 감추어지고 항상 받는 자로 있음을 확인하는 형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지각 과정들에 있어서 세포들의 손상이나 뇌 세포들의 일부가 크게 손상을 입어 폭력에 대한 절제능력이 없는 환자들이 치료대상자들이 되기 전에 제일 먼저 사회적 여론이나 합의에 의해서 희생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물며 극히 예외적으로 북한과 같은 폐쇄된 사회에서 인권유린은 사회적 여론이나 합의조차도 없이 희생들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인류가 얼마나 통곡해야 하고 슬프고 뼈아픈 사실인지 모른다.
인간복제에 대한 반대의 근거로서 생명과학 스스로가 세포 분열에 있어서 한 극점이나 두 극점들이 생기기 전에 세포 밖에 외부 인자들이 선행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고, 인간의 세세한 육체적 성장에 있어서도 성장을 주도하는 인자들이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사라진다는 사실도 발견하였지만, 그런 사실들을 전혀 무시하고 실험하는 과학적 행위들이 얼마나 죄가 되는지 모르는 것도 보이지 않은 폭력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성경에서는 창조의 원리가 동물보호와 인간 존중의 기틀이 되어 있다. 그러나 살인과 사형 및 자살을 금지하는 깊은 원인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는 창조 방식에서부터 그 내용 및 목적에 있다. 기본적으로 죽음은 최대로 은총들을 다시 거두시는 방식일 뿐 육체와 영혼의 분리로 끝나지 않는다.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것도 주시는 일을 감추시고 최대로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는 방식이며 항상 창조자 하나님이 다 이루시고 자신의 일을 자신이 평가하여 그 보상을 자신에게 돌리지 않고 피조물에게 돌리시는 하나님의 역사의 기본 틀이다. 따라서 죄는 또 다른 형벌을 받기 전에 이미 그 자체로 형벌이 된다. 그런 방식처럼 정반대로 영생을 위한 구원도 그 원인을 하나님의 의지 안에만 두게 하심으로 피조물의 어떤 것도 고려하지 않은 방식에 의해서 절대적 차별이 없게 하신 것도 살인이나 아무리 악독한 죄인일지라도 그리스도인들의 편에서 무조건 용서할 수 있도록 하신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하나님 편에서 진정한 공의가 실천이 되더라도 인간사회의 의도처럼 원래의 자리인 존재를 소멸하기까지 벌하지 않으신다. 즉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죽음의 정도가 최대이고 마지막 영혼의 소멸은 하나님께서 쥐고 계시며 사탄
까지도 공의가 최대로 실현될 수 있는 정도로 영원한 불이 준비되어 있어도 존재의 소멸까지 가지 않는 방식이다.
인간의 존재 결코 소멸되지 않아
결론적으로 참된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 자신이 최대의 보상이고 상급이신 것처럼, 하나님 없이 사는 피조물이나 인간에게 최대의 벌은 공의와 모든 속성들을 가지신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이 최고의 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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