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굴레들로부터 벗어나 하나님 안에서 자유 누려야”
한 사람이 위대한 진실 혹은 사실을 발견하기 전에는 그는 결코 진정한 진실이나 사실과 싸우는 자가 아닌 것 같다.
그리스도인은 진실을 찾아가는 순례자
일생동안 어떤 진정한 진실이나 사실을 위해 싸워 온 사람일지라도 그가 자신 앞에 진정한 진실과 사실들이 발견될 때까지 아직 위대한 진실을 추구하는 자나 위대한 학자나 과학자가 되지 못한다. 물론 위대한 사상가들의 책들을 읽고 인류에게 공헌한 학자들의 논문들을 탐구하여 어떤 자기 자신에 대한 진실 혹은 세계에 대한 진정한 사실을 찾아 여행하는 삶도 정직한 삶의 길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래서 자신의 말이 그 일에 방해가 된다면, 이제 원전을 탐구하고 원전을 이해하지 못해서 해당 언어들을 깊게 배우며 직접 그런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나라에 가서 그들과 같은 언어생활과 그들의 말의 뒤에 있는 진실과 사실을 찾아 끊임없이 어떤 진실과 사실을 찾아 노력할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 그 일을 위해 방해가 되는 모든 것들을 버리고 그것을 위해서 끊임없이 자유인이 되는 일도 위대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아니면 가장 오래된 시도로서 직접 요가나 무예 등 어떤 수행을 통해서 직접 그런 진실이나 사실을 찾고자 노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찾고 있는 자는 진실한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기본 틀을 깨고 끊임없이 그런 진실이나 사실을 찾아 살아가는 사람들도 쉽게 만나기가 어렵다. 대부분 무엇에 얽매어 살거나, 일단 길에 들어섰기 때문에 계속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알 수 없고 벗어날 수 없는 어떤 가식 속에서 산다. 직업들이란 그런 가식들의 대표적 굴레들이다.
사실 현대인에게 일자리란 병든 환자들을 치료하는 수단으로써 기능하는 것 이외에 그 자체가 인간을 노예로 전략시키게 하는 기본적인 틀인데도, 일자리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그렇게 약해 있다. 반면에 판단을 중지하고 언어사용을 중지하여 어떤 진실을 찾아 여행하는 자들에게는 어떤 것에 집착하는 것 자체가 너무 큰 굴레이다. 그런 굴레들에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 무엇인가 이웃에게 더 줄 수 있고 더 주는 자로 있다면 그는 행복한 자유인이다. 지금 문제는 그런 자유인들이 자신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이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땅마다 주인이 있고, 산에도 물에도 주인이 있어 그런 자유인들은 그런 공간들로부터 항상 쫓겨난다는 사실이다. 그들에게는 깨끗한 물을 마시거나 신선한 공기로 호흡할 수 있는 자유도 허용이 되어 있지 않다. 교회들 안에도 그런 자유인들을 위한 자리가 없다.
더구나 세상의 모든 굴레들로부터 벗어나서 하나님 안에서 자유를 누리기를 원하는 자들이 갈 곳도 점점 더 좁혀지고 있다. 성경 때문에 성경에 나타난 모든 일들이 자신에게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믿는 자유인들도 있지만,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 자신을 사실로 믿기 때문에 그 사실 앞에 성경에 나타난 일들이 자신에게 반복될 수 없다고 보고 그런 일들만을 사실로 믿고 사실 그대로 그 하나님 안에서만 모든 족쇄들로부터 전적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자유인도 있다.
하나님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주후 3세기 초 기독교에 대한 심한 핍박시대에 이미 취득한 그레고리 타우마투르구스(Gregorius Thaumaturgus, 205-265 ? AD)의 자유처럼, 그 자유의 전통을 이어 성자와 성령을 성부와 동일실체로 보고 성부와 동일하게 성자와 성령을 창조자와 섭리자로 경배하여 오직 법적으로 유일한 한 하나님에 대한 예배 대신에 세 가지 다른 경배의 방식을 소개하거나, 한 모나드 안에 세 모나드를 생각하듯이 논리적 혹은 수리적 종합의 방식에 따라 경배하지 않고 오직 세 위격이신 한 하나님께만 경배하는 자유인들이 진정한 역사적 그리스도의 자유인들로 남아 있다.
하나님의 뜻 이외에 자신의 삶의 원리에 있어서 아무 것도 고려하지 않는 그런 자유인들은 가능한 자기와 같은 자유인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좋은 것으로 교통하며 적극적으로 많이 도와야 한다. 잘 보이지 않는 그런 자유인들이 줄어들면 땅에 어두움이 쉽게 찾아오는 법이다. 포스트모던주의자들도 지금 근대적 광기놀이들로부터 벗어나 마치 오늘 금융위기를 예견한 듯이 현대문명과 문화 및 경제가 대중(la masse)을 생산해내고 사회적 모든 것들이 그 대중 속에 함열하되(vient imploser) 대중 자체가 스스로 함열하면서 마치 훨씬 넓은 세계를 잉태하는 것처럼 그런 생산적 폭력(la violence) 자체를 사랑하는 미학에 따라 보고 해독하고 배우는 담론적인 조작이 아니라 시위나 데모, 자폭 행위와 같은 촉각적인 조작의 힘을 지향하는 자유인들로서 나타나고 있다.
그런 자유에 비하여 그리스도인들의 자유 사랑은 모든 것들로부터 가장 자유로우신 하나님을 향하여만 즐거워하는 자유 사랑이고, 하나님으로만 항상 즐거워하는 자유인이기 때문에 그들은 오직 그 하나님으로부터 생산되는 자유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허무가 병이 되어 있는 자유인들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으로 충만한 자유인으로서 모든 것들을 흡수할 수 있는 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동조자들이 없는 것이 더 큰 슬픔일 것이다. 후기 과학의 시대에 일상생활이나 일상언어들의 재발견은 과거에 발견된 진리들이 거의 거짓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우리의 언어 속에도 없고 우리의 의식에도 없으며 보이지 않고 볼 수도 없는 세계에 일상적인 모든 것들의 원인들이 있기 때문에 그것들마저 더 신비한 세계로 발견되고 있을 뿐이다.
하나님의 충만에서 자유 누릴 수 있어
그렇기 때문에 새해에도 여전히 궁극적 진실과 사실로 돌아갈 수 있는 자만이 허무 자체가 병이 되어버린 현대의 또 다른 새로운 광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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