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론과 진화론은 근본적으로 비교 대상일 수 없어”
진화론 자체가 새로운 과학적 사실들을 발견하는데 기여했다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오히려 진화론과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과학적 사실들이 발견된 적이 훨씬 많다.
진화론은 과학적 기여가 불가능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적 과학자들이 그렇게 발견된 과학적 사실들을 통해서 진화론을 진화시키고 과학과 항상 진화론을 양립시키고자 하는 과학적 태도 자체는 엄밀한 과학적 태도가 아니다. 지구 안에 있었던 생명체들의 다양성과 유사성을 역사로 재편성하는 작업만큼 진정 진실을 왜곡할 수 있고 엄밀한 과학에 스스로 가장 치명적인 해를 끼칠 수 있다.
그런 진화론과 창조론이 대립될 수 있는 것도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창조론이란 환원주의적인 과학도 아니고 다수의 지각으로 엄밀한 검증에 기초한 과학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함께 있는 믿음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조론은 진화론처럼 스스로 진화할 수 없다. 다만 진정한 과학적 사실들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적 이해를 깊게 해주고 있을 뿐이다.
과거에 하나님의 창조론에 의해서 발전된 근대 기계적 역학론(impetus 이론)이나 에너지 보존의 법칙 등과 같은 고전적 개념들과 일상용어들은 버릴 수 있어도 우주의 통일에 기여하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점점 더 크게 과학으로부터 요구되고 있다. 진정한 과학적 진보를 위해서라면, 1844년에 다윈의 머리 속에 자연의 역사를 재조립하였던 스케치들을 하나도 남김이 없이 완전히 버려야 현대 과학의 미래가 있다. 왜냐하면 지금의 부정할 수 없이 축적된 과학적 사실들을 종합하는 특별한 표상을 얻기 위해서 우리의 언어나 생각 속에서 제일 먼저 우리의 머리를 잘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최소한 우리의 뇌를 없애야 한다.
과거에는 우리의 개념들이나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언어들만을 제거해도 되었지만, 지금은 우리 자신 전체를 완전히 없애야 새로운 개념들을 발견할 수 있다. 과학적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는 과학자들에게 가장 큰 장애는 말할 수밖에 없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있다. 그들에게 자신의 언어들에 따라서 대상이 있고 그 대상에 따라 표상되는 것, 모든 것들이 장애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들이나 표상들은 결코 자연적 언어들이나 자연적 표상들이 아니다. 진화론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발생된 자연적 선택, 중성적 선택, 개인적 선택 등 어느 것을 택하든 선택이란 언어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주어를 앞세우고 목적어를 쓰며 동사를 쓴다는 것 자체가 문제이다. 소리를 그림으로 바꾼다든지 그림을 소리로 바꾼다는 등의 디지털 정보 놀이 자체가 자연으로부터 이미 인간이 매개로 하는 비약이 있기 때문이다. 뇌를 향하여 정보 방향이 있는 것 자체, 눈으로 본다는 것 자체가 인간적인 것, 생명의 비약이기 때문이다.
진화론은 이것부터 먼저 설명해야 할 것이다. 역사의 방향이 종의 무한성으로부터 종의 단순성으로 발전이라고 가정해도 쉽게 무너지는 진화론은 엄밀한 과학과 병행해서 갈 수 없는 것이다. 엄밀한 과학은 자연을 완전히 다시 만들 수 있
을 때, 진정한 과학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생존할 수 있는 과학적 이론이 아니다. 미래 과학에 기여할 수 있는 과학자는 어설픈 과거 과학적 이론에 매여 있는 자가 아니라 그런 이론들을 완전히 뒤엎을 수 있는 새로운 이론을 발견하는 사람들의 것이다. 진화론의 무한한 진화이든, 어떤 새로운 과학적 이론들의 등장도 창조를 믿는 신학이나 기독교 신앙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다. 그 이유는 그런 신앙에 대한 고집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만큼 하나님에 대한 이해
가 깊어질 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관계된 속성들에 의해서 우주의 동질성과 다양성이 모두 완전하게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명과 과학적 이론들은 계속 무너져도 그 하나님과 그의 속성들은 더 크고 기이하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과 은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주를 창조하셨다는 하나로 모두 풀리어 진다. 현대 물리학이 발견한 힘이나 에너지로부터 자유로운 세계란 겨우 절대속도와 절대 가속도가 같은 시공간의 세계(Cm의 세계)가 전부이다. 소위 차원들의 세계란 그런 한 절대속도의 세계 안에서도 충분히 설명이 된다. 그러나 신학에서는 그런 절대속도보다 더 큰 절대속도들의 세계들(Cp, Cs, …. Cx)을 가정할 수 있다. 즉 이런 세계들일지라도, 적어도 그런 세계들이 수축하여 정보단위를 만들 수 있는 세계들에 불과하다. 그러나 최대의 정보의 세계(C )를 초월한 하나님의 세계는 수축될 수 없기 때문에 어떠한 정보단위도 만들어 질 수 없는 정보의 세계이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 끝없이 발전해
그런 정보의 세계로부터 설명된 우주와 자연이 어떻게 진화론과 비교될 수 있겠는가? 진화론과 창조론이란 비교 자체가 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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