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교인들은 미래 생활의 희망되어야”
요즘 나라 안팎으로 어디에서나 밝은 모습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얼마 전 여름이 머지 않아 자동차에 태양열 에어컨 시설을 장착하는 프로그램 개발 겸 성도들의 현재 생활 모습을 느끼기 위해서 오랜만에 세운상가와 주변의 부품가게들을 들러 전자부품들을 알아보는 일이 생겼다.
턱없이 경쟁력 떨어진 세운상가
외국 인터넷에서 그렇게 쉽게 구할 수 있는 부품들일지라도 그 부품들을 보유한 상점들이 어느 곳에도 없다는 사실에 놀랐다. 활기가 차야할 복도나 좁은 거리에는 상점 직원들 이외에 사람들이 없어 조용하고 썰렁한 분위기이었다. 그리고 상점마다 오래된 부품들이나 재원들만을 쌓아 놓고 먼지가 쌓인 물건들을 이리 옮겼다 저리 옮기는 정도로만 상점들을 지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자들에 대해서 가장 많은 종류들을 보유한 상점에서도 ‘당신이 찾고 있는 단자 하나 만드는데 몇 백 만원들이 들지 모른다’고 퉁명스럽게 답변하였다. 세운상가 한 가게의 한 젊은 사무원만이 친절하게 맞이하며 자신의 가게에서 보유한 다른 부품들을 소개하면서 “찾으시는 그 부품은 없지만 이것들을 사용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 지금 개발에 필요한 그 수량에 대해서 돈을 받을 수 없다”고 하면서 그냥 건네주었다. 그리고 나머지 다른 부품들에 대해서는 보유할만한 부품 상회들을 낱낱이 기록해 주고 어느 한 부품에 대해서 구로에 있는 같은 회사의 전자상가에 재고
가 조금 있는 것으로 확인이 된다고 하면서 그 곳에 있는 사무원에게 바로 전화하여 두 개만을 보내달라고 부탁하면서 그냥 줄 수 없고 원가만을 받고 다음 날 오시면 건너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런 서비스의 질과 상관없이 거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부분 완제품으로부터 부품상가들 그리고 원자재 가공지역, 원자재 상가로 이어지는 고리들이 있기 만하면, 지금도 전문상가지역으로서 충분한 기능들을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이다.
그렇지만 국제사회에 있어서 국가 경쟁력의 상징인 원자재의 주 거래방식에 있어서 나노나 마이크로 금속분말들로 거래되는 모습들이란 원자재 상가에서 전혀 찾아 볼 수 없었고, 원자재 가공지역에서도 그런 금속분말들을 가지고 제품들을 만드는 가공상가들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기초과학들이 연결될 수 있는 터가 전혀 형성되어 있지 않는 상태에서 어떻게 고급 일자리들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인지 걱정이다. 세계적으로 경쟁하려면, 가까운 도서관에 책들이나 잡지들이 세계적이어야 하는 것처럼, 전문상가들에서는 기본적으로 세계에서 유통이 되는 모든 부품들이 증권 거래처럼 거래되는 분위기가 되어야 하고 세계적인 기술들의 특허주장기간이 끝나는 순간에 이미 그런 기술들을 가지고 있는 기업들이 그런 기술들의 상품들을 바로 출시하는 그런 경쟁력이 가시적으로 증명이 되어야 그 때 비로소 질 높은 일자리가 생길까 말까 할 것이다. 특히 물리학이나 화학의 기초과학들에 대한 기술들이 너무 뒤떨어져 그런 기초과학 분야들에 있어서는 중국과 같은 신흥개발도상국가의 기술들과의 격차까지도 아주 좁혀지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최근에도 다른 정신장애 치료 의약품들 중에서도 부작용이 적으면서 복용 상 주의를 잘 지키면 다양한 정신 장애질병들에게 치료효과가 큰 리스페리돈에 대한 특허주장이 2007년 말로 끝나자마자 중국에서는 이미 그 전문의약품을 출시하여 수출 판매하고 있지만, 한국의 제약회사들 중에 기존 특허권을 보유한 한국 얀센 이외에 어떤 회사도 자신들의 회사이름으로 그 의약품을 바로 출시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 외국에서 특허권 보유기간이 지났어도 부작용이 많아 판매가 금지된 의약품들이 오히려 한국에서는 유통이 되고 진정 판매되어야 할 우수 의약품들은 특허권으로부터 자유로울 때도 자체 생산도 못하는 경우란 심각한 내용이다. 국가의 경쟁력이란 일상적 외국어구사능력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학교생활에서나 일상생활에 있어서 삶의 상상력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는 삶의 질에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자연에 대한 경이와 인간 삶 자체에 대한 고귀함이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배여 있어야 세계의 이웃에게 무엇인가 줄 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세계에서 유일한 가장 엄밀한 신앙 내용들을 고백하는 장로교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생활과 목회현장에 있어서 종교개혁 시대의 제세례파에 뿌리를 둔 퀘이커교도나 오순절주의자들과 같이 신유은사주의에 빠지고 성경에서 분명히 공적으로 금지된 방언의 은사들을 추구하며 칼빈이 그렇게 크게 경고하여 “하나님에 관한 일을 전혀 모르거나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은총을 수포로 돌아가게 하려는 악의를 품고 행동하는” 그런 천년주의 사상에 빠져 있다면, 미래 사회에 가장 큰 희망인 장로교 성도들에게 가장 부끄러운 신앙생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가난이나 질병 및 생의 고통들과 싸우더라도 성도들이 싸우는 삶의 내용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역시 하나님에 대한 경배와 찬양에 있어서 자유로움을 추구하더라도, 경배와 찬양의 대상이신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 앞에서의 자유로움일 것이다. 그런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그 배경이 분명하지 않은 가사나 곡을 선택하여 경배하고 찬양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부를 것이 없거나 지금 창조된 경배의 시와 노래가 없으면, 성도들의 일상생활에서 독특한 삶의 내용을 가지고 경배하고 찬양하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일지 모른다.
퇴색한 방식으로 살아가선 안돼
성경은 사실을 말하고 모든 사실들이 그 권위를 증명한다. 그 말씀을 생각 만하여도 경배의 내용이 되고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그 사실이 증명이 되어 마음과 입으로 그 감사와 경배의 내용이 표현이 되어도 하나님께 찬양의 노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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