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26일
“에너지 발굴은 이웃 사랑 개념 동반해야”
지구 환경뿐만 아니라 지구 생명체의 역사와 인류의 역사의 단절을 막기 위해서 지금부터라도 공간에너지(space energy or free energy) 이용의 시대로 가야 한다.
에너지에 대한 혁신적 전환 필요
어떤 사람들은 석유자원이 지구 안에 아직 고갈되지 않았다고 주장하여 당분간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석유자원은 지구의 생명체 역사에 있어서 한 번 밖에 없는 역사로부터 생산된 자원들이다. 그 자원은 미래 인류의 문명과 그 역사를 통해 고루 분배하여 사용해도 모자라는 귀중한 자원이다. 아마 미래에 그것이 고갈되면, 다이아몬드처럼 더 비싼 가격으로 무에서 만들어 써야 할 것이다. 특별한 환경에서 특별한 장소에 모아져 있는 그 자원을 끄집어내어 인류가 사용할 때, 그 자원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직접적으로 지구환경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극히 조심해야 하지만 그 자원의 소중성의 차원에서도 그 자원이 일단 자연에 유출되면 수거하는 기술도 띄어 나야 한다.
인류는 귀중한 생활필수품들을 만들어 내는 원천 자원으로서의 특별한 용도 이외에 일단 자동차 이용이나 기타 에너지원으로 석유사용을 멈추어야 한다. 어떤 이는 다른 대체에너지로 원자력 에너지 이용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에너지의 안전한 이용을 넘어 우라늄 자원 자체도 우주역사에 있어서 더 이상 생산될 수 없는 물질이다. 우주 초기 역사에 있어서만 생산될 수 있는 우라늄 전체의 양이 다 지구에 몰아져 있다면, 그것을 실수로 인류가 미리 찾아 다 에너지로 사용해 버리면 나머지 인류역사는 어떻게 되겠는가? 공기나 물도 마찬가지이다. 지구 안에 있는 철 이상의 무거운 물질들은 지나간 우주역사와 함께 하는 귀중한 자원들인 이상 그 이용에 있어서 인류가 신중함을 기하여야 한다. 지구촌 안에 있는 물이나 공기 중의 산소가 인류의 생존역사를 위해서 에너지로 사용될 경우 그들이 아마 달이나 화성에서 생산되어 지구로 공급되어야 할 때도 올지도 모른다.
인간의 수명이 연장이 되고 인류의 전체 생활수준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물질 속에 있는 전자들을 다 끌어내 광자나 중력입자로 바꾸어 쓰는 양이 크면 클수록 그 물질들의 위상기하학적 형태들의 변이로 인한 그 피해가 고스란히 우리에게 다시 돌아올 것은 뻔한 것이다. 지구환경은 우주역사나 우리 은하계 역사에 있어서 독보적인 것인 것만큼 인류가 그 에너지 사용방식과 내용에 있어서 가능한 공간에너지 이용으로 차츰 차츰 전환해 가야 할 것이다. 약한 풍력은 물론 강한 풍력인 태풍과 같은 급격한 공기 층의 변화나 해일과 같은 바다의 운동들, 그리고 태양이 만들어 내는 운동들을 이용하여 인류문명에 유익 되게 이용되는 기술들을 빨리 개발해야 한다. 우수기에 그저 바다에 흘러가는 가장 순수한 물들을 땅 위에 저장하여 인간에게 유익한 여러 기능들을 하고 바다로 흘러가도록 하되 결코 직접 흘러가지 않도록 해야 한
다.
국가의 공적자금들이 국민들에게 사용될 때 그런 방식으로 사용이 되어야 하듯이, 그런 자원들도 인간들에게 충분히 유익 되게 순환되어 최종 미생물들을 통해서 자연으로 돌아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지구촌의 일자리들은 그런 과정에서 발생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지향성 자체의 오류와 판명성의 오류들은 끊임없이 인류를 자연으로부터 분리시키고 단절시키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오류들을 가지고 자연에 적응하고 자연에 융화하면서 무한한 일자리들을 만들어 내도록 하는데 목적을 두어서는 안되고 모든 일자리들이 오히려 자연의 순수한 상태를 보존하는데 기여하는 방향이어야 할 것이다. 미래형 생산시설들이나 주거시설들은 전략적으로 먼저 태양열을 이용하여 직접 전기 에너지로 바꾸어 이용하거나 그 에너지를 이용하여 자연의 물로부터 수소나 산소, 및 과산화 수소를 생산하여 자동차나 기타 동력에너지원으로 이용하여 물로 되돌리는 친환경 자가에너지시설들로 전환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일생생활에서부터 그리스도인들은 창조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면서 살아야 한다.
창조의 은혜에서부터 감사의 생활을 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속성으로 닮아 가는 성화의 삶에서도 감사의 생활을 할 수 없다. 우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창조된 인간에 대해서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그 같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복들을 스스로 차 버린 그 인간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얼마나 사랑하신 지를 아는 자들로서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가만히 서 있고 평안히 잠을 자도 죄인으로 남아 있는 자들에게 꿈에서라도 감사의 꿈을 꾸어도 모자라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감사의 생활이다. 한 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이하는 것 그 자체가 우리에게 부끄러움으로 남아 있다. 그런 우리를 잘 아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무런 이유 없이 그의 기뻐하심에 의해서 자신에게 의존하고 그에게만 필요한 것을 구하며 그와 함께 있고 동행하며 그 안에 항상 머물러 있기만 하는 것이 복이라고 하신 것일 것이다.
새해 맞아 감사하는 생활 많아지길
그런 하나님으로부터 독립 자체가 피조물에게는 스스로의 불행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최고의 아름다운 형상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 자체가 그의 형상으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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