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기독교개혁신보컬럼

우리의 진정한 모델은 누구인가? / 남웅기 목사(바로선교회)

새벽지기1 2021. 8. 10. 06:55

2007년 12월 20일

 

“거짓과 불의와 싸우는 성도들이어야”

 

어느 분야든 유명한 성공모델이 있습니다. 스포츠만 해도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태권도에선 2004년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문대성 선수가 있고, 수영에서는 내년도 북경 올림픽에서 금맥을 캐 줄 것으로 기대되는 박태환 선수가 있고, 피겨스케이팅에선 김연아 선수가 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 사랑도 받아 

 

누군가 한 분야에서 최고를 이룰 때 모두들 감동을 받습니다. 그러나 감동을 넘어 열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입니다. 태권도를 배우는 아이들은 모두 문대성을 꿈꾸고, 수영을 배우는 젊은이들에겐 박태환이 우상이 되기 마련입니다. 어디 스포츠뿐이겠습니까? 모든 분야에는 성공모델이 있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은 제마다 하고 싶은 게 있고, 갖고 싶은 게 있고, 꿈꾸는 분야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기가 꿈꾸는 분야에서 지존을 차지한 사람을 이상형으로 삼습니다. 그때부터 그를 흠모하며, 그를 따르며, 그를 자랑하게 됩니다. 그와 같이 되는 꿈이 그의 삶의 기쁨의 근원이 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꿈을 이룬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도처에 그 꿈을 방해하는 것들이 있어 우리를 괴롭게 합니다. 꿈을 포기하고 편하게 살 것인가? 아니면 꿈을 이루기 위해 고통을 떠안을 것인가? 이것이 바로 인생의 지고한 선택의 역할이며, 이것이 바로 그 사람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기준이 됩니다.꿈을 이루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는 몸부림, 그것을 성경은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표현합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마 5:6). 세상 사람들의 꿈이 무엇인가의 성취에 있다면 성도의 꿈은 무엇인가를 추구함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의를 추구함’은 무엇을 이루는 과정이 아니라 그 자체가 이미 목적이요. 결실입니다. 의를 추구하는 자가 받을 성경상의 ‘배부름의 약속’ 역시 물질이 아닌 ‘의의 배부름’ 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의인은 무엇을 이룬 것으로 기뻐하지 않고 그 몸부림 자체로 의의 평강을 누리는 줄 믿습니
다.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모두 존경받지 않습니다. 무슨 책을 썼느냐가 중요합니다. 인류에 공헌을 끼친 작품인지, 작가의 주머니를 두둑하게 해준 작품인지를 세상은 다 압니다. 진정한 작가는 장사치 작가를 작가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모든 분야에서 다 그렇습니다. 명화(名畵)를 위해 굶어가며 평생을 사는 사람이 있나 하면, 돈벌이로 그림 그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진정한 화가는 돈벌이 화가를 화가로 생각지 않습니다. 누구를 성공모델로 삼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정체성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 ‘부패는 용납해도 무능은 용납 못하겠다’는 말이 유행합니다. 아이가 거짓말 하는 것은 용납해도 성적 나쁜 것은 못 참는 오늘날 현실의 반영이라 하겠습니다. 남의 아들 두들겨 패고 오는 것은 참아도 남에게 맞고 오는 것은 못 참는 요즘 세대부모의 심성을 빼다 닮았습니다. 슬픈 현실입니다. 세상이 엉망 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다 치고, 교회마저 그러면 못씁니다. 교회란 무능은 감싸 안아 줄 수 있어도 죄악은 용납할 수 없는 곳입니다. 거짓과 불의와는 싸워야 하는 게 교회요 성도의 몫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사람을 보면 그가 목사이든, 장로이든, 권사이든 참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세상에서 성공한 성도가 거짓에 연루되고, 거짓을 일삼고, 거짓의 노예가 되어있는 것을 보면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더욱 그를 감싸고 추종하고, 열광하는 교계 지도자들을 보면 분노가 치밉니다. 저들은 왜 의에 목말라하지 않고 성공에 목말라 할까요? 저들도 그렇게 성공만을 추구하며 거짓과 더불어 살아왔기에 감각 없이 오빠부대처럼 열광하는 것일까요? 

 

의에 목말라 하는 이들 없어

 

아무도 온전한 의를 이룰 순 없지만 그 몸부림마저 포기해선 안 됩니다. 우리의 진정한 모델은 성공모델이 아니라 목마른 의의 모델인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