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22일
탈레반이란 1994년 10월 2만 5000여 명의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에서 결성한 수니파(派) 무장 이슬람 정치 조직을 가리킨다.
탈레반 정체는 무장 이슬람 정치 조직
결성 당시부터 탈레반은 군정 세력으로 출발해 1994년에 이미 아프가니스탄 국토의 80% 정도를 장악한 뒤 이듬해 수도 카불(Kabul)을 점령, 14년 간 계속된 아프가니스탄 내전과 4년 동안의 모자헤딘(Mojahedin : 무장 게릴라 조직) 권력 투쟁을 종식시켰다. 이어 과도 정부인 이슬람공화국을 선포하면서 결속력 있는 세력으로 등장, 아프가니스탄 내 반군 조직을 무장 해제시킨 뒤 약탈과 강도, 부정 부패를 없애는 데 힘을 쏟는 한편, 일상 상업 활동을 재개함으로써 전통적인 아프가니스탄 가문의 지지를 얻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내전이 계속되면서 국가 접수(接收)가 어려워지자 지역 지휘관들과 전략적 협정을 체결, 지역에서 일어나는 심각한 위법 사항과 이에 따른 각종 인권 침해를 도외시함으로써 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더욱이 이슬람교에 대한 엄격한 해석으로 인해 갈수록 사회 차별이 심해지고 여학교 폐쇄, 텔레비전 금지, 가혹한 이슬람식 처벌제도 부활, 아동 학대 등 많은 부작용을 낳음으로써 국제 사회의 비난을 사게 되었다.
탈레반은 지금 아프가니스탄의 반정부군으로 활동하면서 한국의 의료 봉사단 23명을 무고히 인질로 잡아 산간에 숨겨놓고 아프간 정부에 대해 자기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인질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2명은 풀어주었으나 불행히도 봉사단 중에 2명을 이미 살해했고 나머지 19명의 인질을 붙잡고 자기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여성인질까지도 죽이겠다고 위협한지 벌써 30일이 지났다.
세상에 우연은 없다고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데 탈레반이 저지르고 있는 만행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첫째, 탈레반의 만행은 항상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위협 세력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항상 우리를 위협하는 세력이 있어왔다. 북한과 일본 그리고 중국(중국의 동북공정은 우리를 심히 괴롭혔다) 등이 우리를 끊임없이 위협해왔는데 탈레반이 그 위협의 하나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의 주위에는 항상 위협하는 세력이 있었다. 사사시대에는 블레셋 다섯 방백, 가나안 사람들, 시돈 사람들, 히위 사람들, 헷 사람들, 브리스 사람들, 여부스 사람들, 메소포타미아, 모압, 미디안, 암몬 등이 있었다. 그리고 그 후 왕정시대에는 블레셋 족속, 에돔 족속, 모압, 앗수르, 애굽, 바벨론 등이 이스라엘과 유대나라를 괴롭혔다. 탈레반이 우리를 괴롭히는 위협 세력의 하나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만큼 이제는 세계가 너무 가까워졌다.
둘째, 탈레반은 북한이나 일본이나 중국을 대신할 대체 위협 세력이라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 있는 위협 세력들은 그 동안 교대하여 우리를 위협해왔다. 북한이나 일본이나 중국이 잠잠한 틈을 타서 탈레반이 나선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스라엘이나 유대나라 주위에 있는 위협 세력들은 한꺼번에 대들지 않고 교대하여 대들었다. 앗수르가 등장하여 괴롭힐 때는 바벨론이나 애굽은 잠잠했다. 그러다가 어떤 시점이 되면 위협 세력이 바뀌었다.
한 세력만이라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위협이 될 수 있으니 하나님께서는 한 세력만 허락하시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경우 북한이 위협할 때는 일본이 잠잠했고 북한이 잠잠할 때는 일본이 독도 문제 같은 것을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일본이 잠잠하니 중국이 동북공정을 가지고 우리를 괴롭혔다. 이제 앞으로 탈레반의 위협이 끝나면 어느 세력이 등장할지 모른다. 과거에는 반드시 가까운 나라들이 우리를 위협했으나 이제는 세계가 다 우리의 이웃이 되었으므로 알카에다 같은 세력이 우리를 괴롭힐 수도 있다.
셋째, 탈레반의 만행은 우리로 하여금 ‘깨어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신호로 알아야 한다. 이스라엘이나 유대나라의 주위에 꼭 한 가지 위협세력이 있었던 것은 영적으로 깨어 회개하며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사인(sign)으로 존재했었다. 우리가 탈레반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는 교회들이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벧전 4:7). 이스라엘의 왕정시대에 기도하는 사람이 있었을 때 외적을 물리칠 수 있었다. 사무엘은 블레셋을 쉽게 물리쳤고(삼상 7:3-17) 다윗은 모압, 암몬 자손, 블레셋 사람들(삼하 8:12)과 아람(삼하 10:19) 등을 물리쳤다.
이제 우리 교회들은 합심하여 기도할 일을 만난 것이다. 우리가 경성하여 기도하면 탈레반도 쉽게 물리칠 수 있을 것이며 만일 기도로 대항하지 않고 정치력으로나 혹은 외교적인 채널만 바라본다면 처참하게 당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지금도 말씀하신다(막 9:29).
정치, 외교력 아닌 기도로 물리쳐야
탈레반을 이기느냐 아니면 지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뼈를 깎는 회개와 기도에 달려 있다. 탈레반 뒤에 일어날 또 다른 위협 세력도 역시 우리의 회개와 기도를 필요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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