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기독교개혁신보컬럼

노사갈등에 해결책은 없는가? / 김수흥 목사(합신 초빙교수)

새벽지기1 2021. 7. 23. 05:57

2007년 8월 6일

 

우리 사회에 언제부터인가 노사갈등이 사회의 큰 문제로 대두되었다. 어느 곳에서는 갈등이 연중행사로 치러진다. 그리고 어느 곳에서는 일 년에 몇 차례 노사갈등이 일어난다. 자주 일어나는 노사갈등을 TV화면을 통해 시청하다 보면 자연히 눈살을 찌푸리게 마련이다. 

 

끊임없이 발생하는 노사갈등

 

노동자들이 “단결”이라고 쓴 붉은 댕기를 머리에 두르고, 모두 오른 손을 어깨 위로 올려 어깨 밑으로 내려오게 하지 않은 채 위 아래로 올렸다 내렸다하면서 시위하는 모습을 보면 무슨 공산당 집회 같기도 하여 불쾌하기까지 하다. 차라리 붉은 댕기말고 다른 색으로 바꾸었으면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노동자들이 매장 안을 점거하여 판매 자체를 거부하는 사례까지 생겼는데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20여 일이 넘어가는 일까지 생긴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임직원 일동이 국민을 상대하여 사과 성명까지 내기에 이르렀다. 


사실 노사는 잘못하면 갈등을 일으키기 쉽다. 근로자는 사용자측(사장, 경영진, 회사)으로부터 임금을 더 받거나 대우를 더 잘 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고, 사용자측은 더 싼 임금으로 노동자를 사용하여 더 많은 수익을 올리려고 하는 고로 싸움이 일어나기 쉬운 것이다.그러나 노사갈등이 없는 곳도 있는 것을 고려할 때 갈등을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최근 TV방송국에서는 노사갈등이 없는 곳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가끔 화면을 통하여 방영해주는 것을 보면 갈등을 방지하는 비결은 사측이 먼저 양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근로자들은 사측의 양보를 받고 감사한 마음으로 힘을 다하여 일을 한다는 것이다. 근로자는 회사가 잘 되어야 근로자도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하고 또 사측은 노동자가 잘 살아야 일을 잘 해서 회사가 더 잘 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이런 마음가짐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는 마음이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들의 경우 노사화합은 아주 쉬운 것이다. 먼저 사측에서 양보하는 것은 기본이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조카 롯에게 요단평야를 양보했다(창 13:8-9). 양보한 아브라함은 결코 손해를 보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조카 롯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리라”(창 13:9). 양보는 사랑인고로 하나님께서 반드시 갚아주신다. 양보한 사람이 손해 보는 법은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도 절대로 없다. 
사측의 사람들은 양보에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 문제가 일어났을 때 회사 경


영에 있어 최고책임자나 혹은 경영진 중에 무슨 죄가 있는지를 깊이 성찰(省察)해야 한다. 사측이 폭리를 취하는 것도 죄이고 근로자들을 인격 대우하지 않는 것도 죄이다(엡 6:9). 또 사측이 회사를 경영하는 중에 불법을 사용하는 것도 죄이다. 죄가 있는 곳에 문제가 생기게 되어 있다(약 5:4). 죄가 있는지 성찰하여 발견되면 즉시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께 노사갈등을 해결해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갈릴리 바다를 잔잔케 하신 예수님은 쉽게 회사를 정상화시켜 주신다(마 8:23-27). 근로자 측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면 노동자조합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 혹시 지금 노동자 조합에 들어 있다면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사측을 향해서 시위를 해서 좀 더 잘 살아보자고 생각하는 것은 부끄러운 생각이다. 우리의 생사화복은 사람들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이다(삼상 2:6-10). 우리의 배는 하나님께서 불려주신다(마 6:33; 요 15:11). 
만약 우리가 대우를 더 잘 받기 위해서 세속인들처럼 노동자 파업에 가담한다면 하나님 앞에 죄가 되는 고로 우리는 잘 살지 못할 뿐 아니라 매번 그런 행동이나 하다가 가난한 채 죽게 마련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살아야 복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을 향해서 시위를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우리의 문제를 맡겨야 한다(눅 18:1-8). 혹시 사측에 무슨 부정이 있는 것이 확실하다면 반드시 언어(言語)로 건의해야 할 것이다. 만약 건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부정에 협력하는 것이다. 그럴 때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짓는 것이다. 우리는 회사나 일반 사회의 부정을 보면 건의해서 고쳐야 한다. 그것이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마 5:13). 오늘날의 시위는 다분히 회사의 성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분배를 달성하려고 파괴적인 수단을 쓰는 행위인고로 동참할 수 없다. 우리의 복지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는 고로 하나님께만 매달려야 한다. 

 

인위적 배분 투쟁은 잘못

 

우리는 세인들처럼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또 애써 하나님께 기도하여 세상에서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말고 꾸어줄지언정 꾸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신 28: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