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기독교개혁신보컬럼

너나 잘 하세요 / 이재헌 목사(대구 동흥교회)

새벽지기1 2021. 7. 19. 06:49

2007년 7월 19일

 

모든 사람들에게 자기를 살피며 보호하는 본능적인 욕구가 있다는 것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방어라는 면에서 어쩌면 당연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성장과 발전을 위해 다행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너무 지나치게 강조될 때에는 부정적인 면이 너무 크게 드러나는 것도 사실이다. 

 

이기적인 사람들 많아

 

우리는 그런 사람을 향하여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런 사람들의 숫자가 많아지면 그 집단이나 사회는 곧 심각한 문제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바로 이런 심각함이 제한 수위를 넘어 선 듯한 모습을 여기저기에서 보게 된다. 얼마 전 한 일간지가 보도한 사회면의 한 기사를 보고서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어느 덧 우리 사회의 장례 문화가 매장에서 화장으로 바뀌어 가고 있으며 이제 그 비율도 50%를 넘어가고 있다. 심각한 문제는 이런 수요를 다 감당할 만한 화장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화장장을 구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4일장을 치르는 일도 다반사이다. 예약을 못한 사람들은 3일장 일정을 맞추기 위해 ‘원정 화장’에 나서기도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일부의 사람들이 묘지 근처 숲 속 등지에서 가스버너와 드럼통, 절구 등을 이용해 시신을 태우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비극적인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무엇이 이 사회를 여기까지 오게 했는가? 그 깊은 곳을 들여다보면 잘못된 ‘자기중심주의’ 혹은 ‘이기주의’라는 뿌리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화장장, 쓰레기 매립장, 장애자 보호 시설, 심지어 노인 요양소까지도 모두 혐오 시설이라는 명찰을 붙여 놓고서는 이런 시설들이 필요한 건 알지만 내가 사는 동네만큼은 안 된다는 ‘자기중심적 집단 이기주의’가 더 이상의 시설을 할 수 없도록 만들었고, 결국 이처럼 회귀한 현상까지 만들어 내고 있다. 


사실 우리 교회도 요즘 비슷한 문제로 이웃간에 약간의 문제를 안고서 고심하고 있다. 그 동안 우리는 교회 주차장을 평일에 인근 주민들에게 무료 개방을 해서 활용하도록 해 왔는데 최근에 이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수개월 전부터 주차장을 인접하고 있는 주민들이 소음과 복잡함을 이유로 평일 주차장 폐쇄를 강력하게 요구해 온 것이다. 물론 그들은 자신들의 집 앞에 약간의 개별 주차 공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상당한 기간 동안의 버팀(?) 끝에 결국 그들의 요구대로 폐쇄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나니 이제는 주차장에서 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있으면서 지금까지 자유롭게 주차 공간을 활용하던 이웃들이 불편함을 호소하며 주차 공간을 열어 달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 모두는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자기중심’이라는 뿌리칠 수 없는 이기적인 사고다. 모든 상황을 자기중심으로 이해하고 만들어 가려는 본능적인 욕망이 강하게 자기를 덮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회와 이웃의 모습에서 교회는 자유로운가? 이미 유명 브랜드(?)를 지닌 대형 교회가 한 지역에 들어와 자리를 잡으면서 인근의 군소 교회들을 평정(?)하는 부끄러운 모습들이 이제는 낯설지 않은 현실이 되어 있다. 우리 교회에 대한 자부심이 자긍심에서 지나쳐 다른 

교회, 다른 교파가 섬기는 하나님과 우리 교회에서 내가 섬기는 하나님은 전혀 다른 하나님으로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세대간에는 물론이요 동료 간에도 진정어린 충고나 사랑을 나누기조차 조심스러운 모습이 성도간에 그리고 목회자들 사이에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음을 본다. 많은 사람들의 인기를 얻었던 영화의 한 장면에서 여주인공이 내뱉는 한 마디 “너나 잘 하세요”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메아리치듯 들려오는 듯 하다. 

 

‘우리’라는 의식 커지기를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우리 주님은 분명히 ‘나와 너’가 아닌 ‘우리’라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려오기를 기다리고 계실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는 성도, 사면을 살피며 함께 나가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우리 함께 잘 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