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9일
인간은 본래부터 관계의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 하나님과 화목하고 사람들과 화목하고 자연과 화목하면서 행복하게 살도록 지음을 받았다. 그런데 죄로 말미암아 이 삼중적 화목의 관계가 깨어졌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이 깨어진 화목의 관계를 회복시켜주셨다(고후 5:18,19).
회복된 화목의 관계가 복음
나는 지금 하나님의 은혜로 거의 모든 교파와 계층의 사랑들과 화해를 이루면서 즐겁고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 그리고 화해를 심는 일들을 즐겁게 하고 있다. 우리 사회 안에 화해와 상생을 심으려는 ‘상생’ 운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내가 이렇게 화해에 관심을 가지고 화해를 힘쓰게 된 배경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나는 본래 교제와 사귐을 폭넓게 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기적인 사람이었고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미국에 유학 가서 처음 몇 년 동안은 몇몇 한국 학생들과만 교제하며 지냈다. 그러다가 예일 대학교와 아이오와 대학에 가서 공부하면서 교제와 사귐의 폭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외국인 학생들에게 다가가서 친절하게 인사를 먼저 건네고 그들에게 교제의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주말에는 내가 살고 있던 작은 방에 몇몇 외국인 학생들이 모여서 즐거운 교제의 시간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때 나는 남을 위해 돈을 쓰며 남을 대접하는 즐거움을 배우기 시작했다. 아이오와에서는 내가 한인 유학생들을 불러모아 놓고 운동회도 하고 야외 소풍도 했는데 너무 즐거웠다. 나는 그 때 이미 인생은 만남이고 나눔이고 기
쁨이란 사실을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가 학위와 연구를 모두 마치고 파사데나에 가서 8개월을 머물며 선교학을 연구하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생후 2, 3 개월 밖에 되지 않는 어린 아들 철원이가 로스안젤스 췰드런즈 호스피탈에서 뇌수술을 받게 되었다. 수술을 하는 의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의 아기가 수술을 받은 후 장애아가 될 수도 있습니다.”
너무나 충격적인 말이었다. 나는 그 때 이런 고민을 하게 되었다.
“내 아들 철원이가 수술 후 장애아가 된다면 내가 그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
‘그렇다’는 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며칠을 고민하면서 기도했다. 며칠 후 답이 나왔다. “나는 철원이가 장애아가 되어도 그를 사랑 할 수 있다.”
철원이가 나의 아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사고의 변화는 나에게 엄청난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나는 그때까지 잘난 사람, 온전한 사람, 건강한 사람, 예쁜 사람들을 주로 좋아했다. 이런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네가 무슨 자격으로, 네가 무슨 권한으로 하나님께서 똑같이 사랑하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차별한다는 말인가!” 나는 그 음성에 항복을 하기 시작했다.
1974년 8월 후암교회의 교육 목사로 부임한 다음 후암동 109번지의 제일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다 깊은 애정을 쏟게 된 것도, 폐결핵으로 쓰러져 마산 결핵요양소로 간 원의숙 학생을 비롯한 불치의 병든 사람들을 찾아가서 돌보게 된 것도 모두 이와 같은 나의 시각의 변화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나의 시각의 변화는 그 후 나로 하여금 강자보다는 약자 편에 서게 했고, 부유한 사람들보다는 불우한 사람들 편에 서게 했고, 여당보다는 야당 편에 서게 만들었다. 그래서 차츰 흑인 편에 서게 되었고, 북한 동포 편에 서게 되었고, 조선족 편에 서게 되었고, 최근에는 모슬렘 편에도 서게 되었다. 참으로 이상한 변화였다.
이와 같은 나의 시각의 변화는 나로 하여금 여러 종류의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원만하게 만들었다. 보수적인 사람들과는 물론 진보적인 사람들과의 관계도 원만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타 종교인들과의 관계도 원만하게 되었다.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포용의 폭이 점점 넓어졌다.
이해와 포용의 관계 넓어져
정치와 문화와 종교가 다를지라도 그들의 영혼 속에 하나님께서 심어주신 고귀한 인성과 영성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들을 귀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결국 화해의 폭이 점점 더 넓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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