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9월 30일
최근 미국에 허리케인 참사가 일자 피난객들은 줄지어 안전지대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자기 집에서 죽겠다고 눌러앉은 사람들이 있었다. 교회는 피난처다. 그러나 교회마저 부패하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사막으로 들어가 수도원을 짓고 거기서 신앙의 순결을 지키며 살려고 노력하였다.
지금도 수도원이 있지만 개신교에서는 기도원을 만들었고 또 현대식 수도원도 있다. 예수원이 좋은 예이다. 같이 숙식하며 기도와 묵상, 그리고 노동을 기도 같이 여기며 공동체 생활을 하는 곳이다. 그뿐 아니라 대천덕 신부님은 한국사회에 특히 한국교회에 경고의 말씀을 선포한 선지자적 역할을 하시다가 돌아가셨다.
교회는 세상의 피난처 되어야
또 하나의 기독교 공동체는 강원도 양양에 있는 라브리(불어로 ‘피난처’라는 뜻)가 있다. 1955년 프란시스 쉐퍼 목사 부부가 스위스에서 시작한 작은 공동체다. 라브리는 특수한 사명을 가지고 시작됐다. 라브리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첫째,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말씀과 삶으로 증거하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Faith Mission을 원칙으로 사는 것이다. 예로서 재정은 광고하지 않고 기도만 해서 먹고 산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통해서 보내 주는 것으로 생활한다. 이것은 물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신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재정뿐 아니라 동역하는 간사와 와서 공부할 학생들도 하나님께 기도해서 보내주시는 사람을 영입하여 동역한다.
둘째, 무엇이든지 기도로 살려면 성령께서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뒤따라가야 한다는 원칙이다.
그러려면 오래 참음과 기다림이 필요하다. 무엇이든지 빨리 성취하려는 한국인의 심성에는 더욱 필요한 은사다.
셋째, 누구든지 와서 정직한 질문을 하면 정직한 대답을 성경에 근거해서 해준다는 원칙이다.
1960년대 미국의 많은 기성 교회들이 심각하게 던지는 젊은이들의 질문을 무시하거나 덮어놓고 믿으라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많은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날 뿐 아니라 기독교 자체를 의심하기 시작했던 아픈 추억이 있다. 그들은 “덮어 놓고 믿으라”는 기성세대의 반지성적 태도에 실망했던 것이다.
넷째, 크리스천은 세상에 살기 때문에 세상 문화에 마땅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에 자유주의 진영에서는 보이는 세상에 관심을 쏟았던 반면에 보수 교회에서는 하늘의 일(영적인 일)에만 관심을 두었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에 보수 진영에서도 세상일에 관심을 가지고 문화 운동을 하기 시작한 것은 다행이다. 기독교학문연구소가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잘 가꾸며 살라는 창세기 2장의 문화 명령은 아직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최근 문화에 대한 관심 높아져
“주님이 ‘이것은 내 영역이 아니다’라고 하는 영역은 하나도 없다”라고 한 어거스틴의 말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진리이다. 그래서 마틴 루터는 “주님이 오늘밤에 오신다하더라도 오늘 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라브리는 메마른 정신 세계 전선에서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다. 라브리는 심신이 피곤한 사람에게 사막의 오아시스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오아시스에서 생명수로 기운을 차린 후에 세상에 다시 나아가 나무 한 그루 심기를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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