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미국의 신세를 참 많이 진 나라입니다. 특히 한국기독교는 미국에 대해 거의 절대에 가까운 신뢰와 의존도를 보이며, 천국 다음에 미국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어 미국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졌습니다. 또한 전 세계를 강타한 현재의 금융위기는, 그동안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에 퍼부은 천문학적 전쟁 비용(5조 달러)과 미국 금융 자본주의의 타락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미국은 현재 마약 소비국 1위에다, 인구 당 재소자 비율도 1위 국가입니다. 성인 인구의 7%, 남자의 12%인 1,300만 명이 유죄선고를 받았고, 흑인 남자의 경우 5명 중 1명꼴로 감옥 경험이 있을 정도입니다.
과연 이런 미국이 중국의 도전을 막아내고 초강대국의 지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결론은 쉽게 내려지지 않습니다. 더 깊이 들어가 봐야 합니다.
미국만큼이나 극명하게 그 찬반이 갈리는 인물이 조지 소로스입니다. 주식투자의 귀재인 그는 초단기 핫머니 거래로 엄청난 부를 축적해서 “추악한 국제환 투기업자”로 비난 받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엄청난 금액의 자선행위로 “가장 선진적인 21세기형 자선사업가”로 칭송을 받습니다. 무엇이 조지 소로스의 참 모습일까요?
헝가리 유대인 출신인 그는, 칼 포퍼의 “열린 사회 철학”에 심취한 철학도였습니다. 나치를 피해 미국에 온 후, 철학을 포기하고 20대 때부터 뉴욕에서 주식 거래에 뛰어들어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그 천문학적인 돈에 부담을 느끼며 여전히 검소하게 산다는 것과 유대기관에 기부나 이스라엘의 지원에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980년대에 들어서자 그는 갑자기 거액의 돈을 한 곳에 지원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곳은 공산정권이 무너지기 시작한 동유럽이었습니다. 폴란드의 자유노조운동, 체코의 77헌장 그룹운동에 거액을 기부하였고, 국제 엠네스티에도 기부했습니다. 1984년부터는 특히 헝가리 재건을 위한 사회 전반에 걸쳐 매년 수천만 달러를 지원했고, 부다페스트에 세운 ‘중앙유럽대학’은 유럽 초일류대학으로, 한 사람의 기부금으로 대학을 세운 것은 전례가 없습니다. 그렇게 현재까지 투입한 액수는 무려 500억 달러나 됩니다. 유엔조차 하기 힘든 일을 소로스 혼자 하였고, 앞으로 할 것입니다.
거액을 아낌없이 쏟아 붓게 한 그의 신념은 무엇일까요? 바로 세계를 ‘열린사회’로 만드는 것입니다. 최근 그는 북한을 열린사회로 만드는데 고심하지만, 누구와 접촉할지 마땅한 인물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북한은 세상에서 가장 폐쇄된 사회입니다.
자선사업 연구가 월드메이어 닐슨은, “소로스가 제시한 비전의 규모와 책임의 정도, 그리고 그의 실천력을 볼 때, 그는 가장 위대한 자선사업가다.”라고 말합니다.
이미숙 씨가 쓴 “존경받는 부자들, 기부와 자선이 미국을 이끈다.”라는 책에서 미국의 저력은 기부와 자선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곧 제1의 미국은 ‘비즈니스’, 제2의 미국은 ‘정부’, 제3의 미국은 바로 ‘기부와 자선’이라는 것입니다. 스탠포드 전 총장 리처드 라이먼도 말합니다. “기부와 자선은 미국 역사상 가장 알려지지 않은 성공 스토리이며, 건실한 미국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저력이다.”
미국의 기부와 자선은 부자들에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일반 시민들도 매년 1,000달러 이상을 기부하여, 미국에서 매년 거치는 자선 모금액은 3,000억 달러가 넘습니다. 또한 인구의 절반 이상이 자원봉사에 참여합니다.
이런 일상화된 미국인들의 기부와 자선의 뿌리는 당연히 성경과 기독교입니다.
신명기에는 하나님께서 이 땅위에 세우고자 하시는 나라 실체를 볼 수 있습니다.
“매 칠년 끝에 면제하라. 면제의 규례는 이러하니라. 무릇 그 이웃에게 꾸어준 채주는 그것을 면제하고 그 이웃에게나 그 형제에게 독촉하지 말지니, 이 해는 여호와의 면제년이라 칭함이니라.”(신 15:1-2)
이런 면제년을 잘 지켜 행할 때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 커다란 복을 주십니다. 첫째, “네게 유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정녕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신 15:5) 둘째, “네가 여러 나라에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하겠고, 네가 여러 나라를 치리할지라도 너는 치리함을 받지 아니하리라.”(신 15:6)
이 땅에 세워지는 하나님 나라는 ‘인간이 알 수 없는 이상하고 신비한 영적인 나라’가 아닙니다. 가장 큰 계명인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나라입니다. 즉, ‘자선과 기부가 일상화된 나라’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이 없는 나라입니다.
그것은 한 나라나 개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각자의 재능으로 하나님을 누구보다 무엇보다 사랑하며 이웃에게 덕을 끼치며 사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우리들의 삶이고, 나아가서는 한 나라의 모습입니다.
힘을 모아 그런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는 동안, 모두 하나님의 복을 맘껏 누리고 풍성히 베푸는 ‘따뜻하고 넉넉한 부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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