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우인목사

할례언약

새벽지기1 2016. 12. 8. 07:47


산악 그랜드 슬램을 아십니까? 세계 3대 극지와 7대륙 최고봉, 그리고 8,000미터 급 이상 히말라야 거봉 14개를 오르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나라 42살의 박영석 씨가 산악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였습니다. 박영석 씨는 5000미터 이상의 산은, 인간이 어쩌지 못하는, ‘하나님의 영역’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이 인내하고 노력한다고 오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날씨와 환경을 허락해야 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산악인 박영석씨가 한계를 극복하고 은혜의 산에 오를 수 있는 중요한 삶의 태도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어느 것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8000미터 급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천기(天氣)를 잘 읽어야 합니다. 곧 하나님의 뜻을 잘 알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궁극적 본질은 ‘하나님 마음 읽기’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도우심이 절대적입니다. 신앙생활에도 넘어야 하는 산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산을 넘는데, 십삼 년이 걸렸습니다. 이스마엘을 나았을 때의 아브라함의 나이가 팔십 육 세였습니다.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얻었으나, 그로 인한 갈등과 불화의 어두운 그림자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십 삼 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나타나지 아니하셨습니다. 구십 구 세의 아브람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하신 첫 말씀은,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엘 샤다이’. 하나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이 명칭은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하여 친히 밝히신 최초의 경우입니다. 십삼 년 만에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왜 자신을 ‘전능하신 존재’로 밝히셨을까요? 십삼 년 동안 아브람은 자신의 무능함을 뼈저리게 절감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명칭을 들었을 때, 누구보다 그 깊은 뜻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구나.” 아브라함이 얻은 피눈물을 흘리며 배운 최고의 교훈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아브라함의 이름을 바꿔 주신 것입니다.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창세기 17:5) 이어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자신과 모든 남자에게 할례를 행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할례’는 하나님 백성 된 표식입니다. 할례는 남자의 생식기를 자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명은 사람의 힘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에 의해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즉 할례는 나를 죽이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겠다는 결단의 표식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시행하였고 아브라함은 비로소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왜 구십 구 세 되었을 때에 할례를 명령하시고 자녀로 삼으셨을까요? 아브라함의 힘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는 아직도 하나님의 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을 때, 드디어 하나님의 때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건설이 있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룩한 파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동안의 나를 무너뜨리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본토 친척 아비의 차원을 너머, 열국의 아비 아브라함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는 그 진정한 첫 삽을 뜨셨습니다. 그러나 열국의 아비가 될 아브라함이 아직 아들이 없습니다. 이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호적에 등재됨을 의미하며, 하나님께 내 자신을 온전히 드림을 의미합니다.

로마서 3:1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느니라.”사도 바울은 더 크고 본질적인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느니라.”(롬 3:2)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은 최고의 특권이요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성경 속의 여인 중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아비가일입니다. 외모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맡은 자로서 가장 아름답습니다. 다윗이 광야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던 때입니다. 부하들을 그동안 가축을 지켜 주는 등 은혜를 베푼 부자 나발에게 식량을 얻어오도록 하였는데 모욕과 함께 거절을 당합니다. 빈손으로 돌아온 부하들의 이야기를 들은 다윗이 대노하였고, 부하들을 이끌고 나발을 치러 올라갔습니다. 그 사실을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에게 전했고, 그 말을 들은 아비가일은 급히 음식을 장만하여 다윗이 오는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다윗 앞에 무릎을 꿇고 아룁니다. 아비가일이 다윗에게 고하는 것은 그저 못난 남편 한편 살려주십시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첫째, 아비가일은 하나님의 계획을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삼상 25:28) “여호와께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하나님께서 당신 다윗을 향한 비전을 보라는 말입니다.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그런 사람이 이런 시시한 일로 살육을 한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다는 것입니다.

둘째, 아비가일은 미래로 다윗의 눈길을 돌리게 합니다.“여호와께서 내 주에 대하여 하신 말씀대로, 모든 선을 내 주에게 행하사, 내 주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실 때에” 비록 당신 다윗이 이러고 있지만, 당신은 장차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가 될 사람입니다. 그것을 잊지 마소서. 이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바요,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실현됨을 잊지 마소서.”그 말입니다.

셋째, 아비가일은 죄로부터 자유로울 것을 말합니다. “내 주께서 무죄한 피를 흘리셨다든지, 내 주께서 친히 보수하셨다든지 함을 인하여 슬퍼하실 것도 없고, 내 주의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으시리니,” 지금은 화가 나서 잘 모르시겠지만, 훗날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졌을 때에 되돌아보아 후회 없으시길 바란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아비가일의 말을 귀담아 들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그렇구나. 내가 잘못했구나. 다윗이 말합니다. “오늘날 너를 보내신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찬송할지로다.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오늘날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보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삼상 25:32-33)

아비가일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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