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우인목사

만민이 기도하는 집, 강도의 굴혈

새벽지기1 2016. 3. 3. 07:35

주후 70년, 로마가 식민지 이스라엘을 아예 멸절시키려고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였습니다. 당시 지도자 중 한 사람인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는 하나님의 법궤가 모셔진 지고한 하나님의 성전을 십여 명의 랍비가 모여 있는 초라한 회당과 맞바꾸고, 로마군에게 예루살렘 성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는 민족의 반역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나라 없이 전 세계로 흩어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어디를 가나 회당을 세웠고, 그 때 살아남은 랍비들과 그 제자들에 의해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구원 역사와 신앙심이 자녀들에게 철저히 전수되어 오늘에 이릅니다. 그들의 철저한 신앙 교육과 여호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정립된 확고한 자기 정체성은 우리들이 반드시 가르치고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몸 된 교회의 핵심 사명입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성전 척결의 발단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은 것을 보시고” 사람들의 편의를 위한 이 같은 일들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채찍을 만들어 환전상의 테이블을 뒤집어엎고, 동물들을 내쫓아버리시며 외치셨습니다. “이 곳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 더 심한 말씀도 하셨습니다. “강도의 굴혈로 만들지 말라!” 이때처럼 예수님께서 화를 내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당시의 공공연한 비밀에 분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러 오는 사람들 중에는 집에서 기르던 동물을 가지고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제사장들은 여러 트집을 잡아 퇴짜를 놓았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성전에서 동물을 사야 했습니다. 그렇게 제사장들에게 가져다주면 그 동물을 다 죽이지 않고 뒤로 빼돌려 상인들에게 되팔아서 그 돈을 착복하였습니다. 또한 성전세를 내기 위해 성전 세겔로 환전할 때도 폭리를 취했습니다. 상인들은 큰 이권이 되는 그 권리를 유지하기 위해 제사장들에게 뇌물을 주었습니다. 그 사실을 누구나 다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감히 예수님처럼 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성전척결 모습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이 말씀은 예수님의 하나님에 대한 깊고 깊은 몰입, 하나님과 그분의 임재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전을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규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밤낮으로 부르짖어 기도하여, 하나님 보좌를 움직이고, 내 뜻을 관철시키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기도의 내용들은 대부분 자신의 이익 도모와 세력 확장에 관한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연결되는 통로입니다. 곧 하나님과의 동행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주기도문을 상고하면 무엇을 구해야하는지 금방 답이 나옵니다.

   

회당에서의 예배는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받은바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 공유하면서 드립니다. 여기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하나님과 사람들의 사이를 자꾸 벌려 놓지만,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를 가장 가깝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과 직접 접속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예루살렘 성전을 척결하신 사실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전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생활할 때, 하나님께서 성막을 짓게 하신 가장 주된 목적은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하심’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동행’입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겠고,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 25:22)

   

성막은 가나안 땅 정착 후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인도함을 구하는 대신, 하나님의 복을 팔고 사는 쇼핑몰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군림하고 백성들은 맹종하며, 휘둘리며 살아갑니다. 오늘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종교장사꾼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아버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삼 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로마군에 의해 파괴된 하나님의 성전은 그 자리에 다시 건설할 수가 없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성전을 재건하지 못하게 하셨을까요? 재건해 봤자 악한 인간들이 다시 자신의 이득을 챙기는 ‘강도의 굴혈’로 변질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달리기 전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성전을 보시며 우셨습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돈으로 바꾸는 세태를 슬퍼하고, 탄식하신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교회를 이득을 챙기는 곳으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성전마저도 무너졌듯이 그 교회나 사람들도 무너집니다.

   

“내가 삼 일만에 일으키리라.”는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의 진정한 성전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승계한 것이 곧 ‘교회’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몸’ 된 교회라고 말합니다. 다시 건물을 세우고 세력을 확장하는데 힘을 낭비하겠습니까? 그래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가르침과 마음과 정신과 영혼을 이어받고 살게 하는 곳, 예수님의 일을 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이 교회의 목표를 천명합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 4:15)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계 3:8)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 앞에 문을 활짝 열어두셨습니다. 그 문은 누구도 닫을 수 없습니다. 그 생명의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능력이 큰 사람이 아닙니다. 비록 보잘 것 없는 작은 능력일지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하나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주를 향한 사랑이 나를 삼키는 사람이 되고, 우리 자녀들을 그렇게 가르쳐,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신나게 베풀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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