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보좌에 대한 요한의 환상은 일종의 세계관이다. 거룩하다거나 전능하신 분이라거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관통하는 존재라는 표현이 그것이다. 계 4:11절은 하나님의 창조성을 이렇게 표현한다. 마음을 열고, 다른 선입관을 지우고 그 구절을 읽어보자.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앞 구절에서 하늘의 보좌와 벽옥과 홍보석, 이십사 보좌와 이십사 장로, 그리고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와 등불과 수정 같은 유리 바다와 희귀 생물이 거론되는 이유도 하나님의 창조성을 강조하는 데에 있다.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사실을 상투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아야만 목사의 설교는 두 발로 지구 표면을 딛고 사는 기독교인들에게 구원론적 토대를 제시할 수 있다. 이것은 설교만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과도 직접 연관되는 문제다.
두 가지 관점이 필요하다. 하나는 스스로 창조주인 것처럼 행세하는 세상의 정치 사회 권력과의 싸움이고, 다른 하나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자연과학과의 싸움, 또는 대화다. 이를 압축적으로 말하면 정치와 과학이다. 정치 영역보다 과학 영역이 우리에게는 더 어렵다. 정치는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되지만 과학은 두려울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창조 신앙과 정치, 그리고 창조 신앙과 과학의 문제는 다시 책을 써야 할 정도로 큰 주제다. 그걸 감당할 능력이 내게는 없다. 다만 창조주 하나님을 설교하는 자이면서 자기 구원을 삶의 중심 문제로 삼는 내가 알고 있는 상식적인 선에서 말하겠다. 이 두 가지 주제는 앞으로도 내가 살아있는 동안 관심 대상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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