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수요공부의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살아있다는 경험을 언제 하느냐고 물었다.
공연한 질문일지 모른다.
모두들 생생하게 잘 살고 있는 마당에
당신 정말 살아있다는 걸 느껴, 하고 물었으니 말이다.
정신없이 그냥 쫓기며 사는 것과
실제로 삶을 느끼면서 사는 것은 다르다.
대개는 정신없이 산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그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거나 허무하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그런 느낌이 오더라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다시 정신없는 삶으로 돌아간다.
그게 그나마 자신을 지탱해주는 힘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평생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삶이 원래 그런 거니까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주어진 대로 열심히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먹고 사는 것만 해도 힘든 마당에
삶을 느끼지 마니 하는 것은 사치라고 말이다.
그런 생각을 무시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나
그런 방식으로는 삶을 충만하게 누릴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여기 베르디의 <레퀴엠>을 몇 사람이 들었다 하자.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여기서 아무런 감동을 받지 못할 것이다.
베르디의 이 작품을 충분히 감상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생명의 깊은 차원을 여기서 경험할 것이다.
레퀴엠을 모르고 살아도 큰 문제는 아니나
알고 사는 사람에 비해서 삶을 궁핍하게 경험할 것이다.
삶 경험은 바로 하나님 경험이다.
삶을 추상적으로, 또는 형식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도 또한 그렇게 여긴다.
삶에 깊이가 있다는 말을 아무리 들어도 감이 잡히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실질적으로 느끼지 못할 것이다.
좀 줄여서, 직접적으로 말하면 이렇다.
삶 경험은 존재 경험이다.
지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신의 영혼에 가득 채워지는 경험이다.
그런 경험을 하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다.
이 세계 안에 그렇게 존재하고 있는 사실 하나로
충만한 기쁨을 맛볼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 경험 아니고 무엇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