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0장: 순교자의 영광
해설:
온 세상 사람들을 규합하여 하나님에게 대항했던 절대 왕국과 절대 군주들과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이 심판 받은 후, 사도 요한은 한 천사가 “아비소스의 열쇠”(1절)를 가지고 내려 오는 것을 봅니다. “아비소스”는 바닥이 없는 깊은 구멍을 의미하는데, 천사는 사탄을 결박하여 그곳에 가두고 봉인하여 “천 년 동안”(2절) 가두어 둡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숫자는 모두 상징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2절의 “천 년 동안”이라는 말도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매우 긴 기간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에게는 하루처럼 짧은 기간을 의미합니다(벧후 3:8).
그 때 사도 요한은 또 다른 환상을 봅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심판대에 앉아 있는데, 알고 보니 그들은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순교 당한 사람들이었습니다(4절). 그들이 부활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어린 양의 승리와 심판으로 인해 이 땅에서 권세를 누리며 믿는 이들을 박해 하던 사람들이 이제 믿는 이들에게 심판 받는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것이 첫째 부활입니다”(5절)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순교자들이 다른 믿는 이들과는 다른 지위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믿음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은 세상적으로는 불행한 사람들이지만 첫째 부활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의 제사장”(6절)이 되어 천 년 동안 다스리는 복을 누릴 것입니다.
천 년이 지나면 사탄은 잠시 동안 풀려날 것이고, 땅에 있는 모든 민족을 모아 하나님을 향해 마지막 전쟁을 일으킬 것입니다(7-8절). 그들은 다시금 “성도들의 진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도시”(9절)를 공격하려 합니다. 하지만 이 전쟁으로 인해 그들은 모두 패하고 지옥으로 던져집니다(10절). 이것은 그동안 사도 요한이 본 환상들을 통해 거듭 거듭 계시된 사실입니다.
그런 다음 사도는 또 다른 환상을 봅니다. “크고 흰 보좌와 거기에 앉으신 분”(11절)을 보았는데, 그분 앞에서 땅과 하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과거에 죽었던 사람들이 하나씩 불려 나와 그분 앞에 섰고, 그분은 “생명의 책”에 기록에 따라 “자기들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았습니다(12-13절). 이것이 “둘째 부활”입니다. 죄인들이 심판을 위해 일으킴을 받는 것입니다. 심판 받은 사람들은 모두 불바다에 던져 졌습니다(14-15절).
묵상:
요한계시록을 종말의 시나리오에 대한 계시로 보는 사람들은 천년왕국이 재림 이후에 오는지 혹은 이전에 오는지를 두고 논란을 벌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신 후에 천년왕국이 온다는 견해를 ‘전천년설’이라고 부르고, 천년왕국 후에 재림이 온다는 견해를 ‘후천년설’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그동안 요한계시록을 읽으면서 거듭 확인한 것처럼, 사도 요한이 본 환상들은 종말에 일어날 일들을 시간 순서로 나열한 것이 아니라 믿는 이들이 겪게 될 일들을 반복적으로 보여 준 것입니다. 따라서 천년왕국에 대해서도 확정적으로 해석하고 단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조차 이 환상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믿음을 위해 순교한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특별한 존재로 대접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인간사의 모든 죄악의 배후에 있는 사탄이 결국 결박 당하고 그를 추종하던 모든 사람들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천 년 왕국에 대한 환상의 초점은 순교자들이 받게 될 특별한 보상에 있습니다. “둘째 부활”은 모든 믿는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순교자들은 그 이전에 “첫째 부활”(5절)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우리로서는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믿음을 위해 목숨까지 바친 사람들은 일반 신자들과 다른 반열에 오르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가장 귀중한 것을 바쳤으니, 하나님께서 가장 귀하게 여겨 주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목숨을 바친다는 말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전부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전부가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순교는 가장 어리석은 일입니다. 헛되게 목숨을 버리는 일 중에도 최악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전부로 믿는 사람에게는 가장 영예로운 일입니다. 가장 위대한 존재에게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진짜로 믿지 않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전부로 여겨지지 않으면 못 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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