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열두 제자 (9)(막 3:16)

새벽지기1 2023. 5. 24. 06:02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막 3:16)

병행구인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베드로에 이어서 그의 동생인 안드레를 거명하는데 반해 마가복음은 베드로 뒤로 야고보와 요한을 거명합니다. 예수님은 이들 형제에게 “우레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새길 수 있는 보아너게라는 이름을 덧붙이셨습니다. 열두 제자 중에서 이들 세 명,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본명 이외의 이름을 받은 셈입니다.


예수님은 왜 이들 세 명에게만 특별한 이름을 주셨을까요? 여기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공동체이든지 나름으로 지도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나온다는 걸 감안한다면 이들 세 명이 눈에 뜨일 수는 있었겠지만, 그것 때문에 예수님이 이들에게 특별한 이름을 주었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그러나 이름이, 그것이 본명이든 별명이든, 사람의 정체를 성격화한다는 사실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도 호를 가진 사람들이 있고, 로마가톨릭교회 신도들도 세례명이라는 게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세례 받을 때 교회에 의해서 성인으로 추대된 이들의 이름 중에서 하나를 받습니다. 그들의 신앙생활에서는 본명보다는 세례명이 더 중요하게 불립니다. 정 바울로 님, 김 베드로 님, 박 안드레아 님, 하고 말입니다. (세례명을 본명이라고 하든가요?) 제가 보기에는 이런 제도는 나름으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세례는 이전의 자신이 죽고 새사람으로 태어난다는 의미이니까 새로운 이름으로 시작하는 것도 좋은 일이겠지요.


그러나 궁극적으로 말하면 그리스도인은 그런 고유명사가 아니라 안디옥 교회에서 시작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야겠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뒤따르는 사람이라는 게 바로 우리의 정체성이니까요.

'좋은 말씀 > -매일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두 제자 (11)(막 3:19)  (0) 2023.05.25
열두 제자 (10)(막 3:18)  (0) 2023.05.25
열두 제자 (8)(막 3:16)  (0) 2023.05.24
열두 제자 (7)(막 3:15)  (0) 2023.05.24
열두 제자 (6)(막 3:15)  (0) 2023.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