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시편 74편: 희망이 없는 이유

새벽지기1 2023. 5. 23. 06:15

 

해설:

표제는 ‘아삽의 마스길’이라고 했는데, 기도자는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 당한 이후의 상황을 두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시편이 지금의 모습으로 정리된 것이 바벨론 포로 시기에 이루어진 일이므로 아삽의 시에 당시의 상황이 배어 들어 갔을지 모릅니다. 혹은 아삽의 후손이 쓴 시편일 수도 있습니다. 

이 시편은 환난 가운데 처해 있는 이스라엘에 대한 탄원의 기도입니다. 먼저 시인은 이스라엘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 묘사합니다(1-9절).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하나님께 버림 받은 것 같은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1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값주고 사셨고 친히 속량 하셔서 당신의 것으로 만드시고 시온을 거처로 삼으셨다는 사실(2절)을 기억한다면, 이렇게 오래도록 환난 가운데 내버려 두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성소는 폐허가 되었고 원수들의 깃발이 성소에서 휘날리고 있으니 말입니다(3-4절). 그들은 “밀림의 벌목꾼처럼”(5절) 성소를 파괴하고 모든 것을 불질러 버렸습니다(6-8절). 

 

주전 586년, 바벨로니아 군대는 예루살렘 성을 함락시키고 성전을 파괴합니다. 이 사건은 유대인들에게 역사적 트라우마를 안겨 준 참혹하고 참담한 사건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폐허가 되었다는 사실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어떤 징표도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예언자도 더 이상 없다”(9절)는 사실에 있었습니다. 물리적으로는 폐허가 되었고 영적으로는 공허해진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는 “이 일이 얼마나 오래 갈지를 아는 사람이”(9절) 없었습니다. 희망을 전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인은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합니다. 먼저 그는 하나님께, 언제까지 이 상태로 내버려 두시겠느냐면서 속히 손을 빼어 심판해 달라고 간청합니다(10-11절). 그러면서 시인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고백합니다(12-17절). 그분은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전능자이십니다. 리워야단(14절)은 당시 사람들이 알고 있던 가장 공포스러운 괴물의 이름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무서운 괴물도 하나님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분은 온 우주를 창조하고 다스리는 분이십니다. 시인은 바로 그 하나님이 “옛적부터 나의 왕이시며 이 땅에서 구원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12절)라고 고백합니다. 원하시면 이스라엘의 처지를 한 순간에 바꾸실 수 있습니다. 

 

이 고백에 근거하여 시인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모독하는 사람들을 더 이상 그냥 두지 말라고 간구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로부터 손을 떼신다면 원수들 앞에서 그들은 들짐승 앞에 있는 “멧비둘기 같은”(19절) 가련한 백성일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을 기억하셔서 날마다 주님을 모욕하는 어리석은 자들을 심판 하셔야 합니다(20-22절). 하나님께서 침묵 하시니 “주님께 항거해서 일어서는 자들의 소란한 소리가 끊임없이 높아만 가기”(23절) 때문입니다.

 

묵상:

“우리에게는 어떤 징표도 더 이상 보이지 않고, 예언자도 더 이상 없으므로”(9절)라는 구절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여기서 “징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증거를 말합니다. 시인에게는 나라의 주권을 잃고 성소가 폐허가 되었다는 사실보다 더 큰 절망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이스라엘의 영적 공황 상태가 그것입니다. 물질적인 상태보다 영적 상태가 더 중요합니다. 영적 해이와 공허가 물질적인 파멸을 불러 왔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예언자들이 세상을 보는 눈입니다. 그들은 물질적인 상황 배후에 있는 영적 상태를 봅니다. 증상을 통해서 그 원인을 주목합니다. 물질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있더라도 영적으로 살아 있다면 희망이 있습니다. 반대로 물질적으로 번영 일로에 있다 하더라도 영적으로 고갈되어 있으면 위기라고 보아야 합니다. 시인은 이스라엘이 물질적으로 곤고한 상태에 있을 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바닥에 처해 있다는 사실로 인해 아파합니다. 그가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는 이유는 물질적인 상태를 회복시켜 달라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이 다시금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되게 해 달라는 호소였습니다. 그들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희망을 회복하게 해 달라는 간구였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예언자의 시각으로 이 세상을 바라봅니다. 우리가 속한 나라를 위해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물질적인 조건을 개선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시대의 문제의 뿌리는 영적인 데 있습니다. 영적으로 깨어나 거룩한 백성으로 회복되는 것이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나부터 영적인 눈을 맑게 하도록 힘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