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하나님께만 의존하는 자유가 진정한 자유”
그리스도인들이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예정론을 운명론과 혼돈하는 일과 그것이 자유의지와 충돌된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자유의지는 예정론과 충돌되지 않아
어거스틴 이래 하나님이 살아계신 한 예정론은 운명론이 될 수 없고 하나님의 작정이나 예정은 의지의 자유와 한 번도 충돌된 일이 없다고 그렇게 크게 강조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순간적으로 예정론도 운명론과 똑같이 자유의지와 충돌된다고 직관하는 경향이 많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3장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에 관한 고백에서 가장 크게 강조하는 의미에서 첫 항으로부터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일어날 모든 일을 지극히 지혜로우시며 거룩하신 자신의 뜻의 의논에 따라 불변의 것으로 자유롭게 정하셨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죄의 원인자이었거나 피조물들의 의지에 폭력이 가해지거나 제2원인들의 자유성이나 우연성이 버려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워졌다”고 강조되어 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죄의 원인자가 아니라는 말은 죄란 피조물 편에서만 있다는 말일 것이다. 즉 하나님만이 모든 선들과 행복들 그리고 모든 생명들의 주인으로서 그로부터만 모든 것을 찾아야 되고 구해야 하는 것을 피조물 스스로 그것을 거절하는 것이 죄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런 죄에 대한 원인일 수 없고, 원인 자체가 피조물들에게만 있는 원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죄의 원인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속성들은 실체적 속성 혹은 본질적 속성이기 때문에 어느 한 속성이 다른 속성들과 분리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실체와 같이 동시적이기 때문에 본질상 하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는 결점인 죄의 원인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일 것이다. 나아가 인간들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들의 의지의 자유란 창조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은총의 특별한 형식으로 존재케 된 이상 정보단위가 창조되어 특정 정보단위로 어떤 정보의 형식, 즉 한 생명체 안에서 외부의 모든 정보들이 모아졌다가 다시 통일된 다른 정보의 방식으로 전환이 되는 위상기하학적(topological)이고 계기적 비약이 이루어지는 특별한 형식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의식과 함께 지향적 초점이 생겼을 때만 의식할 수 있고, 초점이 없을 때는 의식할 수 없는 형식이며, 인간 생명의 대표성을 가진 형식도 아니다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식적 통일성이 마치 바다의 파도에 움직이는 종이처럼 임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외부의 모든 정보들이 하나로 묶여졌다가 하나로부터 다시 위상기하학적으로 밖으로 표출되는 운동들의 방향도 의지의 임의성에 의존하는 것이 모든 생명체들의 특징이다. 그런데 의식과 더불어 나타나는 지향적 초점이 눈이나 지각기관들의 운동 방
향과 같다는 것과는 달리, 실제 그런 지향적 기관들이 있게 된 근원적 원인에 해당된 정보들의 방향은 그 반대로 뇌를 향하는 형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① 근원적으로 의식과 더불어 지향적 초점이 있다는 것, ② 그 지향적 초점이 판명성을 향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③ 이런 형식과 정반대로 정보의 방향은 그 반대의 방향인 뇌를 향하여 가고 있다는 이 세 가지는 피조물로서 인간에게 가장 근원적 한계와 본성적 오류들로 남아 있다. 따라서 의지의 자유도 정보의 단위들이 창조될 때 동시에 그런 형식들과 더불어 다른 정보로 시작된 은혜의 형식들인 이상 정보단위가 없는 온 우주에 대한 정보로서만 존재하는 작정이나 예정의 내용과는 상관이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든 의지나 그것의 자유성을 가진 정보 형식들은 주는 자,
즉 창조자를 알지 못하게 하는 근원적 형식이다.
모든 만물들을 명령으로 창조할 경우 그런 창조의 방식 자체가 주는 자, 즉 창조자를 알 수 없도록 하신 어마어마한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주는 방식을 상징하지만, 창조하실 때 주는 것을 받는 방식이 의지의 자유성에 의해서 받는 방식이란 것조차도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르게 주는 유일한 방식일 것이고 명령으로 창조된 방식도 그렇지만 그런 자유형식 자체가 자연으로부터 질서 뒤에 계속 혼돈만이 발견이 되는 근원적 이유에 해당된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과 같은 피조물들의 무한한 자유성은 그런 자유성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하나님의 작정에 따라 집행된 것에 불과한 것이며 무한한 운동이 원 운동이란 형식 안에 갇히는 경우와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집행도 작정에 대한 같은 근원적 원인으로써 하나님의 의지가 먼 원인으로 있고 다른 모든 속성들도 먼 유효적 원인으로 있는 이상, 우리 자신에게 가까운 원인으로 있는 우리의 의지는 그런 먼 원인이신 하나님의 의지에 맞추어 사는 것이 피조물 자신들에게 복이 되는 것이다.
인간 의지는 하나님 의지에 따라야
모든 복은 거기에만 있다. 따라서 인간의 진정한 자유는 오직 하나님께만 의존하는 자유가 진정한 자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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