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돌아보는 시간 가지길”
어느 때보다도 자아 표현이 분명하고 자존감을 확실하게 드러내고 싶어 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모양으로든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고 그렇지 못한 자는 무한경쟁 사회 속에서 자기를 잃어버리는 위기에 처하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
자기 주장 강한 시대 살고 있어
다양하면서 또 풍요로운 정보들이 그 분량이나 전문성에 거의 제약도 받지 않고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무한 입력되는 시대적 환경 때문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 어느 시대보다 지식적으로나 이성적인 판단력에서 월등한 수준을 가지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기 때문일까, 사회 곳곳에서 자기 주장들을 외치는 목소리들이 끊이지 않는다. 이런 현실이 어찌 사회만으로 국한 되겠는가?
교회 안에도 또한 목회자들 속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어쩌면 가장 심각한 수준에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도 든다. 비단 부끄러운 교단 분열의 역사를 말하지 않더라도 개 교회가 안고 있는 크고 작은 문제들 역시 동일한 근원적 문제들을 안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우리의 모습, 아니 나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이 속에서 주께서 원하시는 겸손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말씀의 의미가 어떻게 실천되어야 할 것인가?
복잡하고 어려운 이론적인 설명보다 가장 우선적인 길이 있음을 발견한다. 그것은 바로 내 속에 있는 어떤 말과 생각을 바깥으로 드러내기 이전에 자신을 향하여 아주 간단한 질문을 한 번 더 던져 보는 것이다. 그 질문은 아주 간단하다. ‘그러나…’라는 질문이다. 내 생각에서 생겨나는 내 목소리, 내 판단에서 나온 내 주장을 말하기 전에 먼저 ‘그러나’를 물으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그러나’를 생각하면 내 머리를 가득 채운 그 모든 것을 가슴으로 다시 묻어 버
릴 수 있다. 하고 싶은 일들, 가고 싶은 곳도 많이 있을지라도 ‘그러나’를 되물으며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주를 바라 볼 때에 걸음을 멈추게 된다. 멋진 지도자의 모습을 그리며 팔을 높이 들고서 나를 따르라고 외치고 싶을 때에도, 강력한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내 주장을 외치고 싶을 때에도 한 번 더 물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목회자로서 내가 걷는 이 길은 육신을 입고 오셨으나 ‘그러나’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걸어가신 십자가를 따르는 믿음의 길이기에 ‘그러나’를 외칠 때가 수 없이 많이 필요함을 본다.
마음껏 말하고 싶고 마음껏 뛰고 싶을 때에, 내게 있는 능력을 다 동원하여 가장 멋지고 그럴듯하게 만들고 싶을 때에, 때때로 동조하는 사람들의 박수 소리도 들리며 후원자들의 강력한 힘들이 느껴지면서 이것이 내 생애를 평가하는 최고의 업적이 될 것 같은 유혹이 나를 삼킬 때에도 ‘그러나’를 외치며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우리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그리하여서 머리로는 아쉽지만 가슴으로 나를 멈출 수 있다면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이 길이 아닌 줄 알면서, 이 방법이 아닌 줄 알면서도 ‘그러나’를 외칠만한 용기를 갖지 못해 머뭇거렸던 지난 시간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때로는 사방을 감싸고 있는 사람들의 눈길 때문에, 이런 저런 목소리 때문에,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는 자존심과 체면들이 오히려 나를 억압하면서 속삭이는 소리를 듣고서 조용히 흘러가는 대로 순응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며,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사는 것이라고 유혹 받기도 했다.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무난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라 할지라도 다시 한 번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서 조용히 돌아본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그것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가 가야하는 길이 그 길이 아니라면 더구나 목양의 사명을 감당하는 길이기에 비록 힘이 들고 다른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거나 여기저기서 애매한 소리가 들려올
지라도 ‘그러나’의 길을 가는 것이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회자의 길, 아니 성도의 길임을 믿는다.
하나님 원하시는 길만 찾아가야
이것이 믿음이며 이것이 소망이다. 이 귀하고 소중한 경험은 믿음의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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