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이 땅에서 기독교는 다른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의 공공의 적이 되어버렸다. 무신론인 인본주의, 공산주의 및 포스 트모던주의는 그 존재를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신을 믿는다고 비웃는다. 기독교의 도덕적 가치에 대해서는 낡아빠진 도덕률을 이 시대에도 그대로 지켜나가려 한다고 비웃는다. 특히 ‘성, 생명, 결혼, 가정’ 이라는 하나님의 생육문화명령 에 순종하기 위해 지켜야 할 도덕적 가치에 대해서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억압하는 나쁜 도덕률로 규정한다. 젠더이데올로기를 앞세운 이들의 ‘성혁명’ 이념은 가정과 교회를 파괴하려는 시도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창세기 3장의 뱀의 유혹과 다르지 않다. 유신론 세계관을 가진 다른 종교들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는 기독교의 복음에 대해 다른 종교를 무시하는 편협하고 무례한 주장이라고 매도하고 있다. 기독교가 전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다른 모든 세계관이 비난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적대적 불신감을 표현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적대적인 세상에서 어떻게 자신의 믿음과 기독교를 변호할 것인가? 주된 쟁점을 정리해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실존했는가? 인간인가 신인가? 십자가 처형이 사실인가? 장사한 지 사흘 만에 부활한 것이 사실인가? 예수를 기록한 성경을 믿을 수 있는가?”이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는 말처럼 이러한 의심은 초대교회에서부터 끊임 없이 있었다. 사도들이 한 일은 예수의 십자가 대속과 부활을 증언하는 것이었고, 결국 사도신경이라는 신앙고백으로 요약되었다. 그러므로 역사적 기록 속의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역사성을 증명하는 것이 기독교를 변호하는 핵심이 될 것이다.
예수님이 도마에게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의심을 가진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더 굳은 믿음을 위해 우리는 증거를 가져야 한다.
첫째, ‘그리스도가 실존했는가?’ 라는 질문이다.
신약성경 저자들이 모두 예수님의 제자나 특수 관계 사람에 의해 작성되었기 때문에 실존 자체를 부인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AD 93년 작성한 <유대인 고대사>에서 “대제사장 안나스가 심판관들이 모이는 산헤드린 공회를 소집하고 그들 앞에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를 데려왔다”고 기록했다. 또 로마의 역사가 코넬리우스 타키투스는 AD 112년 작성한 <연대기>에서 기독교인에 대해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의 창시자인 그리스도는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죽임을 당했는데 빌라도는 티베리우스 황제 시절의 유대 통치자였다. 그의 죽음으로 잠시 억제되었던 그 미신은 재발하였는데, 발원지인 유대뿐 아니라 로마 시내에까지 창궐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비기독교인들의 공적인 기록들이 역사상 예수의 실존을 부인할 수 없게 만든다.
둘째, ‘십자가 처형에 의한 죽음과 부활이 사실인가?’
신약성경과 제자들의 서신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특히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역사적 기록이 충분하도록 주변 인물, 당시 다스리던 통치자, 사건이 일어난 위치적인 기록을 상세히 해두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 역시 예전부터 의심의 대상이었다. 그들 중에서 어떤 사람은 예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의 사건이 거짓임을 증명하기 위해 도전했다가 오히려 예수를 믿게 되었다. 하버드 법대의 토대를 닦은 사이먼 그린리프는 “예수의 부활을 믿을 수 없는 일”이라 주장했었다. 그러나 강의를 듣던 3명의 기독 학생들의 도전을 받아들여 법정증거를 채택하는 방식으로 문헌증거를 조사하다 결국 회심하고 조사내용을 <전도자의 증언>이라는 책으로 집필하였다. 영국의 재무장관이었던 리틀톤경과 그 친구 길버트 웨스트는 기독교의 허구성을 증명하려고 증거를 수집하다 <바울의 회심과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책을 보고서로 내놓고 자신들의 회심을 고백하게 된다. 리스트로벨은 무신론자였고, 시카고 트리뷴지의 법정 담당기자였다. 범죄가 잦던 시카고에서 악당들의 재판과정과 그 이면의 문제들을 심층취재했다. 그는 기독교로 회심한 아내를 되돌리기 위해 기독교의 핵심인 예수의 부활을 부정하는 증거를 수집하다 회심하고 < 부활의 증거>라는 책을 썼다. 그는 모든 역사적 문헌증거를 종합할 때 객관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다섯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첫째, 예수는 십자가에서 실제로 죽었다. 둘째, 제자들은 그가 부활하여 자신들 앞에 나타났다고 굳게 믿었다. 셋째, 예수를 핍박하던 바울이 갑자기 회심했다. 넷째, 예수의 동생 야고보도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게 되었다. 다섯째, 예수를 장사지냈던 무덤이 비어 있는 채로 발견되었다. 그는 이 다섯 가지 증거들을 종합하면 예수의 부활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된다고 주장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분을 하나님이 아니라고 부인할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라는 바울의 고백은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요, 그 분의 부활을 믿는 신앙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불신과 비난에 두려워하지 않고, 그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그분의 실존과 부활을 변호할 수 있는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 변호의 가장 핵심요소는 그에 대한 역사적 증거일 것이다. 기독교는 지난 2천 년 동안 제기된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수없이 많은 답변을 제시한 바 있다. 리스트로벨은 그 동안 예수 부활을 의심하는 수많은 질문에 대해 해당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을 찾아가 인터뷰한 결과를 <예수는 역사다>에 총정리 해두었다. 각자 예수 부활을 온유와 두려움으로 변호할 증거들로 준비되어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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