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나눔
“하지만 ‘징비’의 정신은 제대로 계승되지 않았다.
류성룡이 강조했던 안민(安民)과 양병(養兵)의 비전은 실현되지 못했다.
이웃나라의 실상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경고 또한 무시됐다.
그 결과 왜란 당시 백성들이 겪어야 했던 참담한 고통은 30여 년 뒤 병자호란에서 다시 반복됐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보다 더 예민하게 『징비록』을 주목한 것은 일본이었다.
『징비록』은 1695년 일본에서 간행된다(중략).
1712년(숙종 38), 일본에 갔던 조선통신사 일행은 오사카의 거리에서
『징비록』이 판매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고 경악한다(중략).
가해자 일본이 피해자 조선보다 ‘징비의 정신’을 더 강조하는 서글픈 장면.”
중앙일보 「‘책 속으로’ 조선은 왜군에 왜 짓밟혔나, 피로 쓴 반성문」(2015.02.14.)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중앙일보 「‘책 속으로’ 조선은 왜군에 왜 짓밟혔나, 피로 쓴 반성문」(2015.02.14.)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징비록(懲毖錄)』은 『시경』의 문구에서 따온 것으로, 징(懲)은 징계하다, 벌주다의 뜻이고, 비(毖)는 삼가다,
경계하다, 조심하다, 근신하다의 뜻입니다.
임진왜란 당시의 문제점과 실책을 벌주어 그런 재앙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한다는 의미를 담은 책 제목입니다.
저자 류성룡은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으로 전란을 지휘하면서, 승리보다 패했던 내용을 상세히 적었고,
저자 류성룡은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으로 전란을 지휘하면서, 승리보다 패했던 내용을 상세히 적었고,
신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담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조선은 이 책에서 배우지 못하고, 30여년 뒤에 병자호란을 또다시 겪습니다.
반면, 일본은 열악한 출판 상황 속에서도 징비록을 출간하여, 징비의 정신을 새겼습니다.
씨앗이 열매로 이어지지 않으면 역사적 유물이 아닌 그저 박물관적 유물이 됩니다.
스펙이 아무리 좋아도 하나님이 쓰시지 않는 사람,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만 스펙을 쓰는 사람은 안개일 뿐입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약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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