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자신과 제자들 그리고 믿는 자들을 위해 중보 기도하십니다. 특히 믿는 자들인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영광으로 하나 되게 하시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시며, 또 세상 사람들로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중보 기도하십니다.
요한복음 17장은 성경에 기록된 가장 위대한 중보 기도입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자신과 제자들 그리고 믿는 자들을 위해 중보 기도하신 내용입니다. 기도는 참으로 위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은혜를 베푸셨지만, 현재 그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은혜는 과거에 온 것이지만, 믿음은 현재에도 진행 중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능력과 축복에 대해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길이 ‘기도’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믿음이 생기고 곧 풍성한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참 신앙인은 참 기도를 하지만, 거짓 신앙인은 허황된 기도를 하며 그 기도에 능력도 없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아예 기도조차 하지 못 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기도를 하고, 그 기도를 통해 참 믿음과 거짓 믿음의 여부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기도는 중요하기에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중보 기도 대상 세 가지
예수님의 중보 기도에 세 가지 대상이 있습니다.
첫 번째, 예수님께서 먼저 자신을 위해 중보 기도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1절에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라고 자신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예수님께서 자신을 위해 중보 기도하신 사실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각자 자신을 위해 중보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저에게 믿음을 주시사 하늘의 영광으로 옷 입혀 주시고 저로 하여금 주님의 증인이 되게 하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복된 사람으로 세워 주옵소서. 그래서 저를 축복의 통로로 삼아 주옵소서.’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사람이 되도록 자신을 위해 중보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들을 위해 중보 기도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장 6절에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 중에 예수님에게 주신 사람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도 있고 마귀에게 속한 사람도 있으며,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도 있고 세상을 위해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맡겨주신 사람들을 일컬어 제자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다섯 가지를 중보 기도하셨습니다. 하나, 연합과 일치입니다. ‘내가 아버지와 하나인 것같이 저들도 하나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둘, 보호와 인도와 양육입니다. 셋, 기쁨과 감동과 능력의 삶입니다. 넷, 악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즉 제자들로 하여금 악에 빠지지 않고 시험에 들지 않으며 사탄과 싸워 이기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다섯, 진리로 거룩함입니다.
세 번째, 오늘 본문의 내용으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복음 전파로 인해 믿음을 갖게 되는 사람들을 위해 중보 기도하셨습니다.
즉 오늘날 예수님을 믿고 있는 우리를 위해 중보 기도하신 것입니다. 20절 말씀입니다.“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예수님께서 제자들뿐 아니라, 그들의 복음 전파로 인해 대대로 예수님을 믿게 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중보 기도하신 것입니다. 곧 오늘날 예수님을 믿고 있는 우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2,000년 전에 예루살렘에서 열두 사도들에 의해 증거되기 시작한 복음은 오랜 세월 동안 면면이 이어져 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 복음은 유럽을 거쳐 미국으로 건너가 약 100년 전에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한반도에 들어왔습니다. 그 복음을 믿은 사람들이 곧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를 위해 중보 기도한 세계인들
지난 주에 있었던 ‘어노인팅’(Anointing) 집회에서 저는 중국 CBMC의 왕 회장을 만났습니다. 그 분은 6대째 믿는 집안의 사람인데, 조상이 누구를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되었냐고 물었더니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의 언더우드나 아펜젤라 선교사에 해당하는 사람입니다.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에게서 처음 세례를 받은 왕 회장의 조상이 예수님을 믿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것들을 미리 아시고 중보 기도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중보 기도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직접 해당되는 것입니다. 과거에 가정 환경이나 삶의 배경으로 보아 예수님을 믿을 것 같지 않던 사람이 기적적으로 예수님을 믿고 신앙 생활하는 것을 우리는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중보 기도 덕분입니다. 예수님께서 믿는 자들을 위해 중보 기도하시고, 사명을 받은 자가 복음을 전하며, 복음을 사람들이 믿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제가 오래 전에 간증한 적이 있지만, 지난 1980년대 영국에서 3년간 지냈습니다. 그때 마이클 그린 목사님이 목회하시던 교회에 갔다가 70세가 넘어 백발이 성성하신 한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왔다니까 그 분이 너무나 좋아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좋아하시냐고 물었더니, 그 할머니는 신문을 보고 한국에서 6·25 전쟁이 났음을 알고 그때부터 한국을 위해 중보 기도하기 시작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에 가본 적은 있느냐 하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을 만났으니 그 할머니 입장에서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한국 사람들이 예수님을 잘 믿고 지옥과 같은 일제 시대와 보릿고개이라는 가난에서 벗어나 이만큼 살게 된 것도 그 할머니와 같은 많은 세계인들의 중보 기도 때문입니다. 그 할머니는 한국에 와 본 적도 없고 한국에 친구 한 명도 없었지만, 중보 기도의 대상국에서 온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로 그렇게 좋아하며 환영해 주셨던 겁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복을 받게 된 것도 모두 그런 분들의 중보 기도 덕분입니다. 외국의 선교사들이 한반도에 들어와 순교의 피를 흘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중보 기도하고 순교한다면, 후손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기도보다 좋은 유산은 없습니다. 자녀들에게 재물, 사업체를 남겨주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믿음을 물려주는 것이 가장 좋은 유산입니다. 자녀들을 위해, 후손들을 위해 기도하는 부모가 최고입니다. 그것은 수천 대 후손들에까지 전승되는 축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인간적으로 잘났기 때문에, 똑똑한 부모를 두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믿음을 갖게 될 사람들 위해 중보 기도하신 것이 이뤄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미래를 알고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의심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항상 전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항상 기도하면 인생이 살아나고, 가정이나 사업이 살아납니다. 따라서 암이나 불치병에 걸렸다고, 실직했다고 자살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직장이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먹이시니까 우리는 사는 것입니다. 돈이 인생을 책임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을 책임지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간절한 중보 기도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인 것 같이, 예수님과 우리가 하나인 것을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알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예수님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상속권을 갖고,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이 보장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특권이자 동시에 책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자 약속이 있는 자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특권을 누리며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21절 말씀을 봅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어찌 보면, 예수님의 중보 기도가 막연한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본질을 말씀하고 있음을 알 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곧 하나님의 가족임을 말합니다. 이에 관해 에베소서 2장 19~20절 말씀에서 더욱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외국인도 아니고 손님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가족이며 천국의 시민입니다.
계속해 에베소서 2장 21~22절에서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몸을 사용하십니다. 지금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서로 연결해 성전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고로 우리 몸의 성전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한창 공사 중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곧 완성하실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여섯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이고, 가족이며,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졌고, 예수님께서 우리 건물의 모퉁이 돌이 되시며, 우리 몸은 성전이고, 예수님과 함께 지어져가고 있다는 것입니다.지금 순간에 저는 말을 하고 성도님들은 저의 말을 듣고 있기 때문에 제가 가장 복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말로 표현하고 선포하면 더욱 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입술로 말하고 선언해야 합니다. 그러면 곧 그것이 능력이 됩니다. 주님의 영광으로 하나가 됨
기적의 현상은 모든 것들이 정상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물 위를 걷는 것은 정상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특징은 날마다 새로워집니다. 이것이 성령 안에서 갖는 확신입니다. 성령 안에서 무슨 일을 만나든지 든든합니다. 믿는 자는 어렵고 힘들면 찬송하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원수가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간다(신 28:7, 25)고 말씀하셨습니다. 22절 말씀을 읽습니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하나님께서 연합케 하시고, 마귀는 분열케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마귀는 미워합니다. 하나님께서 격려하고 칭찬하시며, 마귀는 고발하고 투쟁합니다. 어디든지 분열하고 다투며 싸우는 곳은 마귀 나라입니다. 그러나 일치하고 연합하며 서로 사랑하는 곳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문화는 격려하고 축복하며 감싸주고 칭찬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일치하고 연합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감사(監査)하고 불의를 고소 고발한다고 나라가 깨끗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서로 사랑하고 믿어주며 반성의 기회를 주는 풍토가 건강한 나라를 세우는 것입니다.
세상에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함
만약 우리가 자녀들에게 법이라는 잣대로 들이댄다면 제대로 살아남을 자녀는 아무도 없습니다. 자녀들이 실수하더라도 격려해 주고 다시 잘 해보라고 용기를 주며, 끝까지 믿어줄 때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23절 말씀입니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우리가 하나 되어 서로 사랑한다면 세상은 변화될 것입니다. 지금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분쟁하지 않지 화합하는 것입니다. 잘잘못을 따진다고 조직이 살아나는 것은 아닙니다. 서로 잘못을 용서하고 허물을 덮어주는 데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시는 것입니다. 24절 말씀을 봅니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23, 24절에서 특징적인 표현은 마지막 부분에 있습니다.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와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당신들 때문에 예수님을 믿어 볼만 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25, 26절 말씀을 읽습니다.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삽고 저희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삽나이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을 위해
‘어노인팅’ 집회 때 장로님들에게 화장실 청소와 주차 안내를 부탁드렸습니다. 앞치마에 고무장갑을 끼고 화장실을 청소하시는 장로님들을 보고 참석자들은 모두 “강의보다 위대한 설교”라고 말했습니다. 남을 섬기시는 장로님들을 보고 깜짝 놀란 것입니다. 세계 도처에 위기가 닥치고 어려움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가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전 세계 전쟁 지역으로 뛰어드는 종교는 기독교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종교는 다르지만 기독교인들은 좋은 일을 한다”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희생, 헌신, 포기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감동합니다. 오늘은 장애우 주일입니다. 우리 주변에 장애우들을 섬기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휠체어를 밀어주고 장애우들이 잘 지나다닐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주는 장면을 보면, 그것이 참된 예배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내용은 한마디로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설교를 정리하면서 성도님들에게 세 가지 축복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성령 충만하십시오. 성령 충만은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만이 이룰 수 있습니다. 둘째,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따지거나 이유를 묻지 말고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행동이 따라야 합니다. 셋째, 사랑의 마음과 언어를 가지십시오. 마음은 태도로 나타납니다. 무엇이든지 좋게 보고 좋게 해석하며 좋은 말을 하십시오. 세상 사람들은 따지고 비판하는 사람을 피해 가지만, 격려하고 사랑을 베푸는 사람을 따르게 마련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모습이고 교회의 전형(典型)입니다.
기도합시다
주님, 오늘당신의 종들의 머리 위에기름 부으셔서
예수님의 중보 기도가 모두에게 이뤄지는
기적과 복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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