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어거스틴

[어거스틴 참회록75] 암부로시우스에 대한 연구

새벽지기1 2017. 5. 29. 13:22


Augustinus 참회록 - 제6권 신앙에의 길.  


 


3. 암부로시우스에 대한 연구.

나는 아직 당신에게 '나를 굽어 보소서'라는 기도를 올리지 않았고
불안한 내 정신은 탐구와 연설에만 열중했습니다.
한편 나는 유력한 인물들이 그토록 존경하는 암부르시우스는
진정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나 그의 독신 생활만은 딱하게 보였습니다.

그는 어떠한 희망을 지니고 있을까?
탁월한 그는 유혹을 어떻게 물리칠까?
역경을 당했을 때는 어떻게 위로를 받을까?
그리고 그의 그윽한 입이
'당신의 말씀'이라는 빵을 씹을 때 맛보는 기쁨은 얼마나 클까?
이런 모든 것에 대해 나는 어떤 추축이나 경험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도 역시 내 고민이나 내 위험의 심연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일상 생활에서 갖가지 근심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돌보고 있어서 늘 바빴으므로 내가 물어 보고 싶은 것이 있을 때는
언제나 그의 입과 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극히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그는 일이 없을 때면
필요한 음식으로 영양 및 체력을 보호하거나
독서로 정신력을 기르는 것이었습니다.
책을 읽을 때 그의 눈이 책장에 떨어지면
그의 마음은 의미를 찾지만 목소리와 혀만은 쉬고 있었습니다.

어떠다 가 보면 ㅡ 누구에게나 출입이 허용되었으며
또 누가 찾아 왔다고 그에게 알리는 법이 없이 직접 들어가게 되어 있었습니다.ㅡ
이러한 방법으로 독서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한참 동안 말없이 앉아 있다가 침묵에 폐를 끼칠까 염려되어
조용히 자리를 물러 나오곤 했습니다.
남의 일에 지친 정신을 모처럼 휴식시키는 이 짧은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음이 분명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가 독서할 때 그렇게 하는 것은 아마 그가 어떤
주의깊게 듣는 사람들이 본문 구절을 해석해 달라는 청을 받기가 싫거나
혹은 어려운 문제에 관해서 토론하기가 싫어서일 것입니다.
이런 일은 그가 독서에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에
별로 원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는 목이 곧잘 쉬므로
목소리를 아끼기 위해 묵독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무렵 그가 어떠한 뜻으로 그랬던지
분명 좋은 뜻에서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의 가슴속에 있는 당신의 거룩한 뜻을
내 욕심대로 물어 볼 여유가 없었고
따라서 그의 말을 듣는 시간이 매우 짧았다는 것입니다.
나를 흔들리게 하는 모든 문제를
그 앞에 쏟아 놓을 수 있는 충분한 여가가 그에게 있기를 바랐지만 
나는 한 번도 그의 한가한 시간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나는 매주일 그가 사람들 앞에서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강론하는 것을 들었고
나의 우롱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해 교묘하게 왜곡시켜서
얽혀진 올무가 풀려질 수 있다는 신념이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신께서 '인간을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셨다'는 말씀이 무슨 뚯인지,
당신의 자녀들이
ㅡ 당신의 카토릭 교회라는 어머니의 태내에서 다시 나으신 자들 ㅡ
전혀 파악하지 못하며 당신이 처음에는 순수한 정신적 존재에 대해서
그렇게도 파리하고 숨겨져 있어서 아무런 기미도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인간의 육신의 형태 속에 있는 듯이 생각하고 믿는다는 것을
내가 알게 되었을 때에는 기쁘면서도 수치스러운 감정이 일어났습니다.

곧 그것은 내가 수년동안 떠들어 대던 것은 카톨릭 신앙에 반대했던 것이 아니라
혈육에 결합된 의식과 환영에 불과한 감정이었니다
내가 의무적으로라도 알기 위해 진리에 대해 물어 보았어야 했는데
도리어 내가 헐뜻으며 죄로 끌어 리려 했으니 나는 그만큼 무엄하고 경솔했습니다.
가장 숭고하시고 가장 가까우시며 가장 깊이 계시지만 어디든지 계시는 분이시여!
당신은 어디나 전체로 계시지만 공간과 장소에 따라 존재하시는 이 아니시고
형체상으로 볼  진실로 인간의 형식과는 다르십니다.
그런 면에서고 인간을 그대로 닮은 모습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그 인간은 공간 속에 한정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