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를 둘러보면 비리와 부조리가 난무합니다.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런 세상을 향하여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누구든지 네 오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속고 속이는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가감 없이, 어떤 손해가 있어도, 그 어떤 명령도 지켜나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을 ‘지고한 묵종’이라고 합니다. 곧 예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연약하기 그지없는 지고한 묵종을 하라 하실까요? 지고한 묵종은 문제해결과 함께 아름다운 열매와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이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의 복수의 칼을 피하여 멀리 이천 리 넘는 길을 걸어와, 천신만고 끝에 외삼촌 라반의 집에 몸을 의탁하였습니다. 외삼촌이니까 자신을 보호해 주리라 믿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역하였느니”(창 31:7) 외삼촌 라반이 조카 야곱을 머슴으로 부리면서 열 번이나 품삯을 속인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누굽니까? 바로 “속임수의 세상”그 자체였습니다.
이런 세상을 사는 사람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하신 첫 말씀이 있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속임수의 세상을 치유하시는 하나님 최고의 처방전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느니라.” 우리의 눈을 세상 나라로부터 하나님 나라로 돌리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부조리하고 부도덕하고 불합리해도, 일단 눈을 들어 하나님 나라를 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세상을 향한 첫 번째 처방입니다. 내 눈을 어떻게 하나님 나라로 돌릴 수 있을까요? 야고보 사도가 분명히 말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약 1:6-7) 현재 상황에 휘둘리는 사람은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언제나 미래를 사는 종말론적인 존재입니다.
예수님의 두 번째 처방은 회개입니다. 회개는 헬라어로 “메타노에오”인데 ‘바꾸다’라는 말과 ‘마음을 단련하다.’는 말의 합성어로 “죄악 된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이키다.”는 뜻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하니, 나도 그렇게 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서겠다는 결단입니다.
우리들은 흔히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나쁜 상황을 곧 호전시켜 주신다고 생각하는데, 잘못된 생각입니다. 내가 저지른 일과 그 영향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잘못된 일을 예수님의 방법으로 바로잡으라는 것입니다.
죄사함의 은총에는 세상에서는 구할 수 없는 두 가지의 큰 선물이 있습니다. 그것은 상처받은 과거로부터의 해방과 해를 입힌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용기와 넉넉함입니다. 죄사함의 은총으로 큰 그릇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큰 그릇에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넘치도록 채워주십니다. 죄사함의 은총이 야곱으로 하여금 그 이 십 년을 견딜 수 있게 하였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더 거룩한 성숙을 이루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세 번째 처방은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의 가르침과 아무리 동떨어져 있어도, 그 말씀을 듣고 믿고 의지하고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았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 하리라.”(창 28:15)는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었습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 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7-8) 사도 바울의 가르침입니다.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였습니다. 현재는 외삼촌으로부터 속임을 당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심은 대로 거두는 중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당하는 일이 그저 심은 대로 거두는 중이라 생각하면, 다른 사람과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야곱을 다르게 만든 것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속고 속이는 인간의 삶 가운데서 억울한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됩니다.
가장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겪는 모든 고난에서 대속적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대속적’이라는 말에는 ‘대신 당함’과 ‘구원’의 뜻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내 대신 당하셨다는 뜻과 그래서 내가 구원받았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고난에서 대속적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내가 고난을 당할 때, 내가 누구대신 당하며 그로인해 다른 사람들을 구원한다는 마음으로 그 고난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물론 대단히 어렵지만 그 때, 그 고난은 말할 수 없이 고귀한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모든 고난을 대속적인 마음으로 감수하기로 합시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최고의 영광으로 바꿔주십니다.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우리가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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