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우인목사

하나님의 예정

새벽지기1 2016. 12. 19. 08:00


아브라함의 자녀 중에 욕산과 미디안이 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그 행위의 선악을 불문하고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욕산은 앗수르 족속의 조상이 되는데, 앗수르는 이스라엘이 남북왕국으로 나뉜 다음 북왕국 이스라엘을 정복한 포악한 나라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앗수르를 사용하여 이스라엘의 죄악을 심판하셨습니다. 미디안은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집트 사람을 죽이고 광야로 도망한 40세의 모세가 숨어든 곳이 바로 미디안 광야였으며,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는 모세의 장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드로는 모세가 위대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기까지 여러 가지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한 개인은 절대로 하찮은 존재가 아닙니다. 나는 악한 욕산입니까, 선한 미디안입니까? 사람들은 많은 일들이 우연히, 또는 사람들의 힘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역사 전체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서 진행됩니다. 이러한 것들을 통칭 “하나님의 예정”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예정의 출발점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입니다. 멸망과 구원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며 이 하나님의 예정은 그 누구도 변경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큰 의문이 생깁니다. 사람들의 멸망과 구원이 예정되어 있다면 너무나 불공평한 처사가 아니냐는 생각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의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택함을 받을 것일까요, 아니면 버림을 받은 것일까요?

흔히 세례를 받고 교회를 다니면 택함을 받고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나 단순한 생각입니다. 신실한 신앙인으로 자타가 공인했던 사람들 중에 신앙을 버린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극단적이 예로, 스스로 구세주를 자처하는 이단의 교주들(문선명 박태선 정명석 안상홍 이만희 이재록 등) 모두 한 때는 그리스도인들 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적그리스도가 되었습니다.

또 반대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가 봐도 그 사람은 결코 선택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 옆에서 십자가에 달린 강도는 평생을 악한 짓만 골라서 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가장 엄한 십자가 처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그런데 숨을 거두기 직전에 주님께 “당신의 나라가 임할 때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말합니다. 그는 누가 봐도 버림이 예정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장 극적인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예정이 의미하는 바가 과연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의 예정은 “신비”입니다. 하나님의 예정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중략)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더 할 수도 없고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으로 그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전 3:11-14) 하나님의 예정은 불공평한 처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의 행사로서 그 목적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는데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예정을 말할 때 요구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경외감과 절대 복종의 겸손한 마음과 무한 감사 세 가지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편에서는 선택받은 자와 멸망 받은 자로 나뉘지만, 사람 편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겸손히 수용한 사람과 계속해서 거부하는 자로 나뉩니다. 하나님은 세상과 사람을 모두 선하게 창조하셨습니다. 그 모든 것을 만드신 다음 흡족해 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들에게 “자유의지”라는 특별선물을 주셨습니다. 이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사명을 수행하는데 사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자유의지를 잘 사용하여서 자유롭게, 다양하게, 창의적으로, 풍성하게 아름답고 깔끔하게 맡은 일을 행할 수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모든 사람들은 자유의지를 통해 정확하게 두 부류로 분류됩니다. 겸손히 수용하는 사람들과 거부하는 사람 두 부류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입니까? 이 또한 내 자신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도와주신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예정 앞에서는 오직 “감사”만 있을 뿐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예정론은 “신앙고백적 예정론”입니다. 구원받고 되돌아보니,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멸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셀 수 없는 실패와 좌절이 있었습니다. “과연 하나님은 살아 계신가?” 수도 없이 의심하고 항변하였습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왜 앞길을 막으시는가?” 밤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아픔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되돌아보니 그 사건들과 사람들을 사용하여 내 진로를 변경하셨고, 그 빼앗음을 통하여서 오직 하나님만을 의뢰함을 가르치셨고, 그 시련을 통해 내 그릇을 점점 크게 하셨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고백적 예정론입니다.

넷째, 하나님의 예정론은 운명론(결정론)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자신이 멸망되기로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록 내가 현재는 멸망으로 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말씀 앞에서 돌아서는 사람들은 구원에 이릅니다. 삶의 여정에서 내 수많은 선택들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 지 늘 숙고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예정은 어떤 이들에게는 저주요, 어떤 이들에게는 축복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저 각자의 선택의 결과가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공부를 통하여 그분의 뜻과 마음을 배워야 하고 예배를 통하여 내 마음을 그분께 집중하고 삶을 통하여 내 전체를 그분께 온전히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예정에 반응하는 가장 올바른 태도를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급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2-14) 사도 바울이 아직 얻지 못했고 이루지 못했다면 당연히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절대적인 기준과 유일한 목표로 삼고 예수님의 십자가로 열어주신 생명의 길을 달려가기로 합시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예정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에베소서 1:4-6) 하나님께 창세 전부터 우리 모두를 사랑으로 택하시고 예정하시고 풍성한 은혜를 공급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도 바울처럼 오직 예수님을 향하여 달려가노라면 모든 운명의 덫과 저주와 허물의 함정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의 가장 아름다운 찬송이 됩니다.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아니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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