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문명의 절정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눈부신 21세기를 살고 있다. 인간이 자연과의 경쟁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두기 직전으로 보인다. 급기야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신의 자리까지 넘보게 되었다. 신을 무시하거나 제거하고 인간이 신이 되려는 시도다. 이게 착각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면 착각도 사실이 된다. 어쨌든지 마음만 하나가 되면 평화롭게 살만한 고도의 문명 환경이 주어졌건만 현대인들은 이전보다 더 거칠게 투쟁한다. 전선이 확대되는 양상이다. 개인의 영혼도 이전보다 더 왜소해지는 중이다. 겉으로는 화려하나 속으로는 찌든 모습이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스마트 폰이 우리의 삶을 여러 모로 변모시켰다. 더 이상 메이저 신문사가 여론을 독점하지 못하게 되었다. SNS를 통해서 여론의 민주화가 명실상부하게 일어났다는 말도 과언은 아니다. 스마트 폰은 무한정의 정보를 제공하며, 무한정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했다. 정보 과잉의 시대가 왔다. 비슷한 정보가 과잉 유통되고, 심한 경우에는 가짜 뉴스도 힘을 발휘한다. 기술 문명의 반작용이다. 온갖 정보에 휘둘리는 바람에 인간이 누군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게 되었고, 자신의 삶을 돌아볼 여유도 잃게 되었다. 요즘 나는 정치 사회 뉴스를 가능하면 안 보려고 한다. 인터넷에서 중요한 것만 선별해서 듣고 웬만한 것은 지나간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것들을 듣느라 내 시간을 쓰기가 아깝기 때문이다. 어느 특정 정치인의 수다에 가까운 이야기를 왜 들어야 하나. 딸에게 들은 이야기다. 스마트 폰을 손에 들고 사는 자신도 나중에는 그 행위가 허무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인간이 과학문명을 발전시켰지만 앞으로는 그 문명이 인간을 지배할 수도 있다. 기계에 의해서 지배되는 세상은 그야말로 지옥 아니겠는가.
나는 반(反)문명주의자가 아니다. 인간의 문명은 인간을 여러 가지 속박으로부터 해방시켰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켰고, 삶의 질을 높였으며, 특히 여자들과 노예들과 장애인들의 삶을 향상시켰다. 사막이나 수도원으로 숨어들지 않는 한 아무도 문명의 길을 피할 수 없다. 그런 걸 다 인정하더라도 나의 눈에 문명의 본질은 인간의 자기 신성화다. 성경은 이미 그걸 뚫어보았다. 타락설화에서 뱀은 아담과 이브에게 눈이 밝아져서 신처럼 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신의 명령을 외면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 제안은 매혹적이고 충동적이었다. 눈이 밝아짐이 바로 문명의 단초다. 계몽주의는 그것의 노골화이자 극대화다. 계몽주의를 거친 인간은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문명을 거부하고 살아갈 수는 없지만 문명의 본질만은 뚫어봐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그것을 이미 2천 년 전 예수의 십자가 죽음에서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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