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길과 진리와 생명은 서로 통하는 개념이다. 길은 진리의 길이자 생명의 길이고, 생명을 얻는 것이 진리이며,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예수는 우리 삶의 길이고, 궁극적인 진리이며, 참된 생명이라는 뜻이다. 이런 인식과 경험에 근거해서 제자들과 초기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할 수 있었다. 예수를 통해서 생명을 얻었으니 생명을 창조하고 유지하며 완성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실제로는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사람을 직접 하나님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른 게 아니겠는가.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는 구절이 이를 가리킨다. 이것은 나중에 삼위일체 개념의 근거가 된다.
‘예수는 우리의 생명’이라는 말은 예수로 인해서 우리의 생명이 파괴되지 않는다는, 또는 파괴된 생명이 회복된다는 뜻이다. 예수로 인한 생명은 우리의 삶을 억압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능력이다. 억압하는 모든 것은 단순히 경제적이거나 정치적인 것만이 아니라 종교적인 것까지를 포함한다. 가치 없다고 여기는 것만이 아니라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도 포함된다. 우리가 기독교 신앙의 깊이로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바리새인처럼 우리의 입장에서 가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분리해서 보려는 사고방식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는 그렇게 분별하면서 살아가도록 교육받았다. 선악을 가르고, 영육을 가르고, 남과 북을 가르고, 갑과 을을 가르면서 삶을 계량적으로 규정하는 삶에 익숙하다. 이런 분별심에 떨어져 있는 한 ‘예수는 우리의 생명’이라는 명제가 능력으로 경험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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