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목사 구원(36) / 정용섭 목사

새벽지기1 2026. 4. 23. 04:29

아무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더 정확하게는 모든 것과의 단절을 통해서 절대적인 대상과의 합일이 이루어지는 죽음의 순간을 일상에서 살아내는 것이 영성의 핵심이다. 그것이 곧 구원 경험이기도 하다. 그 죽음의 순간에 나는 혼자 있고 싶다. 요즘 고독사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로 대두되는 것 같다. 주변 사람과 단절된 채 혼자 고독하게 죽으니 그가 죽었는지 아무도 모르고 경우에 따라서는 한두 달 후에 그 사실이 밝혀지기도 한다. 아무도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서 고독하게 죽는다거나 시신이 방치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겠지만 죽음은 그 자체가 고독할 수밖에 없는 절대 사건이라는 점에서 나는 역설적으로 고독사를 원한다.

 

죽음은 인생에서 아무도 동행해주지 못하는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사건이다. 죽는 순간은 육체적으로도 고통스럽다. 자는 듯이 곱게 죽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가쁜 호흡을 몰아쉬면서 천천히, 또는 갑자기 숨을 멈추게 되고 의식이 사라지고 심장이 멈춘다. 아내나 남편, 자식과 손자들이 그 긴박한 상황에 자꾸 끼어드는 건 아무 도움이 못된다. 편안히 임종을 맞는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말짱한 정신으로 죽음에 집중해야 할 그 순간에 누군가 옆에서 자꾸 말을 걸면 불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가슴이 쿵 하고 울리는 느낌으로 시를 읽는 사람에게 재미있는 티브이 드라마 봅시다.’ 하면 누가 좋아하겠는가. 혹시 그 순간에 내가 아이구, 무서워 죽겠으니 내 옆에 있어줘.’ 하고 매달리면 노망 든 것이다.

 

임종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상상해볼 수 있긴 하다. 한 사람이 침대에 누워서 의식이 점점 흐려지는 걸 느낀다. 가족들이 여보, 아버지, 또는 할아버지, 힘내세요, 하고 말한다. 목사와 교회 어른들이 그 자리에 와서 함께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는 중에 고통 없이, 평화롭게, 맑은 미소를 비치면서 숨을 거둔다. 가족들은 일제히 운다. 그리고 장례를 준비한다. 사람들은 장례식에 모여서 유족들에게 고인에 대한 찬사를 겸한 덕담을 전한다. 유족들도 고인이 행복하게 세상을 떴다고 생각하면서 위로를 받는다. 장례는 고인을 위한 게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것이니 그런 방식으로 위로를 받는 것은 필요하겠지만, 냉정하면 보면 죽은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무리 그럴듯해 보이는 장면이라고 하더라도 죽는 순간의 사람을 혼자 죽지 못하게 간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어떨지 몰라도 내 생각에는 그렇다. 그 무엇보다도 신앙의 관점에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