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우인목사

그 사람 안에 빛이 없으므로

새벽지기1 2016. 4. 27. 22:06


생로병사(生老病死). 우리의 인생을 한 마디로 표현한 것입니다. 태어난 우리 앞에는 늙고 병들고 죽는 일만 남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발버둥 쳐봐야 이를 피할 수 없는 이 생로병사만 보면 우리 인생은 0:4로 지는 게임입니다. 희로애락(喜怒哀樂). 이말 역시 인생을 한 마디로 표현한 것입니다. 인생에는 화나고 슬픈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분명 기쁨과 즐거움도 있습니다. 희로애락을 놓고 보면 인생은 2:2 무승부입니다. 한 신문 칼럼에서 본 이 글이 참 그럴듯했습니다. 누구나 기쁨으로 시작해서 화나고 슬픈 일을 겪다가 기쁨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2:2 무승부로 끝나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은 점점 더 버겁고 힘이 듭니다. 부모로서 자녀들이 슬픔과 어두움 속에서 사는 것을 보는 것처럼 아픈 것도 없습니다. 육신의 부모가 그럴진대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오죽 더 아프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너무나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이 말씀은 우리 인간들의 삶에 대한 진실, 곧 하나님 나라를 펼쳐 보이신 것입니다. 우리 사람들의 죽음은 그저 흙으로 만들어진 육체가 죽는 것입니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육체는 ‘푸시케’이고, 영적 거듭남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연합한 생명은 ‘조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부활은 곧 ‘조에’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죄 된 ‘푸쉬케’를 십자가에 못 박고 ‘조에’로 거듭난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죽음을 두려워하고, 부활을 막연하고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이 ‘조에’를 올바로 이해한 사람들은 죽음을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돈 미구엘 루이스라는 멕시코 외과의사가 있습니다. 그는 현대인들의 잃어버린 내면의 평화와 영혼의 행복을 일깨우는 작가이기도 한데, 그의 책 ‘Four Agrements’는 뉴욕 타임즈가 선정한 베스트셀러로 30개국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그가 잘 나가던 의사에서 작가로 전업하게 된 계기는 자신의 죽음체험입니다. 어느 날 엄청난 자동차 사고로 그는 죽습니다. 사고가 난 직후 자신이 운전대를 잡은 채 피를 흘리고 죽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육체 밖에서 죽은 자신의 육체를 본 것입니다. 순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죽어 있는 저 사람은 누구이며, 그를 보고 있는 나는 또 누구인가?” 동시에 전혀 생소한 또 다른 세계를 보았습니다. 그 세계는 온통 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가 말합니다. “나는 빛 속에 있었고, 그것은 완전한 깨달음, 순수한 인식의 순간이었습니다. 그 빛에 모든 사물의 정도가 담겨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때 나는 절대자 하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렇게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어떤 연유와 과정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다시 소생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과 추구하던 것들을 버렸습니다. 지금까지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 대부분 거짓이고, 잘못된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빛의 세계에 대해서 증언하며 살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한 번도 그 빛을 본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그 빛을 어떻게 전할 수 있을까?” 고심하던 끝에 작가가 되었습니다.

   

여러 의사들의 죽음에 대한 공통된 견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유체이탈 경험. 즉 영혼이 육체에서 분리되어 죽은 자신의 몸을 보았습니다.

2. 터널을 통과하는데, 이것이 죽음에서 유일하게 무서운 경험입니다.

3. 눈부신 신비로운 빛과 만났습니다. 그 빛이 자신을 반기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4. 주마등처럼 과거의 삶을 회고하였습니다.

5. 특별한 지식을 순간적으로 깨달았습니다.

7. 모든 감각이 매우 예민해졌는데, 그 느낌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대단히 긍정적이었습니다.

8. 되돌아가라는 느낌을 받았을 때, 그냥 거기에 남아 있고 싶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죽음의 체험을 하고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변화입니다. 죽음은 더 이상 두려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다리는 것이 되었습니다. 자신감이 늘었고 영성은 더 강해졌으며 물질이나 지위나 권력에 대한 집착은 사라지고, 타인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 기꺼이 돕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며, 남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에 더 열심을 내며, 자신의 것을 나눠주었습니다. 삶의 신성함에 대한 믿음과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신념, 삶의 의미나 목적에 대한 인식이 깊어졌습니다. 영적인 관심이 높아져 종교에 헌신하였지만 자신이 믿고 있던 기존 종교에 대해서 소홀해지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그 종교의 가르침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무슨 짓을 해서라고 이겨 돈을 많이 벌고자했다면, 이제는 자신의 직업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을 도우려 하였습니다. 자신의 직업에 더 이상 의미를 느끼지 못하면, 아무리 잘 나가던 직업이라도 포기하고 새 직업을 구했고, 그 직업으로 다른 사람들을 도왔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다가 다시 죽게 되었을 때,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기쁨으로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이 변화가 바로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는 삶 자체입니다.

   

죽음은 영원한 고향으로 돌아가는 과정입니다. 이 명확한 죽음의 실체를 올바로 이해한 사람만이 제대로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그가 살아난 것은 그의 좋은 믿음이나 예수님과의 친분 때문이 아닙니다. 부활의 실체를 나사로의 죽음을 통하여 보이신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증명하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이 아름다운 지구에 육체를 주셔서 여행을 보내셨으며, 이 육체를 벗고 난 후 하나님 아버지와 더불어 영생을 누리는 것이 인간과 삶의 본질임을 깨닫는 사람, 그의 안에 생명의 빛이 가득합니다. 그 사람은 잠시 실수는 할 수 있지만 결코 실족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그분을 따랐던 사도 바울이 죽음에 대해 일갈합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전 15:55)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죽음은 육신을 벗고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 앞으로 가서, 영생복락을 누리는 축복의 관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