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05 1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삿15:14-20) / 리민수목사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삿15:14-20)  동족의 손에 의해 결박당한 삼손은 레히에 진치고 있던 블레셋이 진영에 이르렀을 때 일어난 일이다. 즉 그곳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덧입은 삼손은 자신을 결박했던 줄을 끊고(14절), 나귀의 턱뼈 하나로 블레셋 사람 천명을 도륙한다. 또한 블레셋 사람을 도륙하는 동안 지쳐 하나님께 갈증을 호소하자 하나님께서 샘을 터지게 하셔서 삼손의 갈증을 해결해 주신다. 삼손을 결박한 줄은 ‘여호와의 신의 권능’이 임했을 때 마치 불탄 삼줄과 같이 소멸되었다(14절). 이것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사건을 연상하게 한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빌2:21-22) / 이금환목사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빌립보서2:21-22)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예수님을 따르기로 했던 제자들은 배와 그물을 버리고, 그리고 아버지와도 작별을 하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셨을 때 그들은 다시 배와 그물을 향해 잠시 돌아가기도 했고, 다시 고향을 향해 가기도 했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자기의 일을 버리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 또 버리고 따랐습니다. 바울이 빌립보교회에 디모데를 보내면서 디모데 만큼은 그렇지 않지만, 바울은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라고 한 것을 보면 디모데 외에는 보낼만한..

생명의 길 (신 4:1-2, 6-9) / 정용섭목사

창조절 1주, 2024년 9월 1일  모압 광야에서 설교를 준비하면서 제가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성경 본문을 쓴 사람과 그걸 받아볼 사람이 처한 상황입니다. 성경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책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종교 천재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말씀을 받아쓴 글도 아닙니다. 모든 성경 텍스트는 구체적인 역사를 배경으로 합니다. 오늘날 설교자들이 21세기 대한민국이라는 구체적인 역사를 배경으로 설교하듯이 말입니다. 그걸 성서학자들은 ‘삶의 자리’(Sitz im Leben)라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설교의 본문으로 읽은 신명기는 기원전 13세기 고대 이스라엘이 처한 삶의 자리를 배경으로 합니다. 그들은 애굽을 떠나서 일종의 난민처럼 40년 동안 광야에서 유목민으로 살았습니다. 그..

대형교회에 다니시는 분들에게! / 정용섭목사

그대가 출석하는 교회는 어느 정도의 크기요? 바람직한 교회의 크기를 계량화하기는 어렵소. 반드시 작은 교회가 좋다거나 큰 교회가 좋다고 말할 수는 없소. 어떤 공동체든지 말씀이 선포되고 성만찬이 집행되면 그게 그리스도 교회요. 작으면 작은대로, 크면 큰대로 역할이 있소. 그렇지만 너무 크거나 너무 작은 교회는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소. 먼저 자립을 하지 못할 정도로 작은 교회는 목사가 먹고 살 수 있는 다른 수입원이 있거나, 또는 남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의 영적 경지를 확보한 게 아니라면 건강한 교회로 유지되기가 어렵소. 먹고사는 문제와 가족을 부양하는 문제는 목사의 영성에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걸 그대도 인정하실 거요. 대형교회(메가 처치)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신광은 목사님이 이라는 ..

바르트의 신학 이야기(33) / 정용섭목사

이 성령은 하나님 자신이시오 성부 성자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하나님이시다. 이 성령은 창조주, 화해의 주, 계약의 주로서도 행동하셨고, 바로 이런 주님으로서 하나님의 행동(창조, 화해, 계약)을 조명하는 힘으로 사람들 가운데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자리에도 거하시고, 거하셨고, 거하실 것이다. 성령은 저 운동하는 공기요, 움직여진 대기이다. 사람은 이 공기와 대기 속에서 이 성령에 의하여 인식된 자와 이 성령을 인식하는 자로서, 이 성령에 의하여 부름 받고 이 성령에게 순종하는 자요, 성령의 말씀에 의하여 증거 받은 자(전혀 다른 전제 없이)로서 살 수 있고, 사고할 수 있으며, 말할 수 있다.(70쪽)      그대는 위의 문장을 읽고 어떤 느낌이 들었소? 바르트가 뭘 말하려고 하는지 알겠소? 알아..

원당일기(3) / 정용섭목사

어제에 이어서 쓰오. 어제는 땅 이야기만 하다가 나무심기는 입도 벙긋하지 못했소. 그런데 오늘도 역시 땅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은 건 웬 조화요. 땅, 흙이 내 몸의 원래 고향이래서 그런 것 같소. 시골의 삶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가장 큰 유익은 흙과의 친밀성을 높여준다는 데에 있는 것 같소. 우리가 결국 돌아갈 세계를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으니 더 이상 좋은 게 없소. 이런 말이 공자 왈로 들린다면 그대는 아직 젊은 거요. 나이가 들었으면 공감하실 거요. 어떤 이들은 또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소. 시골생활이라는 게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고생이라고 말이오. 먹고 살만한 사람들이나 자연, 생태, 흙, 등등의 말을 한다는 뜻이오. 그럴지도 모르겠소.      지난 토요일에 나는 열 ..

원당일기(2) / 정용섭목사

목사들은 토요일이 가장 피곤한 날이오. 주일보다 더 그렇소. 그날 주로 설교를 준비하기 때문이오. 요즘 나는 금요일에 설교를 작성하는 탓에 토요일에 좀 여유가 있게 지내오. 토요일에 넉넉한 기분으로 주일에 할 설교를 다시 검토하기도 하고, 성경을 읽거나 다른 책도 읽고, 어떤 경우에는 밀린 원고를 쓰기도 하오.      지난 토요일(9일)에 ‘기독교사상’에 보낼 원고를 쓰기 위해서 아침을 먹은 뒤 영천 농가로 향했소. 마티즈를 끌고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유실수 묘목’이라는 팻말이 눈에 들어왔소. 차를 급하게 세워 그 묘묙원 안으로 들어가서 둘러보았소. 나무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 없는 나는 무작정 주인에게 부탁했소. 정원에 심을만한 묘목을 10그루만 추천해 달라고 말이오. 물론 그 집은 일반 묘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