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묵상 917

오로지 기도에 힘쓰니라 (행 1:12-26)

감람산에서 예수님의 승천을 보았던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있는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합니다.성령의 임재를 기다리면서 오로지 기도에 힘을 씁니다. 이때 모인 인원은 제자를 포함하여 120명이 모였습니다. 기도의 현장은 보지 않았지만 뜨거웠을 것이 분명합니다.이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파는데 인도자였던 가롯 유다의 죽음을 알립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불리던 가롯유다의 호칭이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되었습니다. 첫 사랑을 잃어버린 이들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누구나 처음은 아름다울 수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은 다릅니다. 천국의 길잡이로 남을 수 있고.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로 남을 수 있습니다.그런후에 베드로가 비어있는 제자의 자리를 채우기를 제안합니다. 제자들은 베드로의 제안에 따라 두 사람의 후보 중 한 사..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행1:1-11)

누가의 기록인 사도들의 사역현장입니다. 사도들의 사역은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이 임함으로 시작합니다.예수님은 부활 후에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보이신 후에 승천합니다. 이때 제자들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질문합니다. 예수님은 이 질문에 때와 시기는 하나님의 주권이라 말씀하면서 사도들이 알바 아니라고 말씀합니다.그리고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승천합니다. 이때 제자들이 보고 있을때 두 천사가 하늘로 올리우신 예수님은 본 그대로 오신다고 말씀합니다.부활은 재 창조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임함은 재 창조의 모습을 말씀합니다. 성령의 임함은 하나님 나라 확장의 근거입니다. 이전 것이 아닌 새로운 피조물의 삶은 재림하실 때까지 복음과 함께 사는 일입니다.성령이 임한 자만이..

지혜와 질서의 창조주 (시 104:19-35)

창조 세계는 하나님의 지혜와 질서를 보여줍니다. 피조세계는 진화론이 말하듯 비인격+우연+긴 시간으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알수없는 설계자도 아닙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모든 만물에는 질서가 있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설명할 수 없는 환원불가능한 질서가 우주 가운데 심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질서가 무너지면 우주는 공멸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손이 우주를 붙잡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자유롭게 살아갑니다.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질서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화롭게 합니다. 창조의 존재는 하나님의 영광의 현시입니다. 사람이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영원히 계속되고 즐거워 하십니다.믿음으로 사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여호와는 위대하시도다.(시104:1-18)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실 때 특별 계시와 일반계시로 나타내십니다.특별계시는 성령의 영감으로 작성된 성경입니다. 일반계시는 자연을 통하여 보여주심입니다.시편 저자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권위와 존귀를 자연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하늘과 바다와 땅과 샘과 각종 동물들과 가축과 새들들이 모두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권위와 존귀를 나타냅니다.모든 창조물은 하나님의 지혜를 현시합니다. 자연을 통하여 보여주신 주님의 전능하심을 봅니다.믿음은 눈을 들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게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과 권위를 볼 수 없고 알 수 없습니다.오늘도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믿음으로 세상을 분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하리니 (신31:30-32:14)

모세의 마지막 노래입니다. 모세는 자신의 노래를 하늘과 땅을 증인삼아 부릅니다. 모세는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합니다. 이름은 존재 자체를 의미합니다. 특별계시와 일반계시를 통하여 드러난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반석입니다. 변함이 없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완전합니다. 하나님의 길은 정의롭습니다. 하나님은 진실하십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고 바르십니다. 이런 하나님께 악을 행하는 것은 자녀가 아니고 비뚤어진 세대입니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모르는 것처럼 어리석고 무지한 사람이 없습니다. 모세는 역사속에서 일하신 하나님을 드러냅니다. 옛날을 기억하라고 말씀합니다. 역사를 잊은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이 이스라엘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바울의 고백대로 나의 나 된 것은 ..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 (신 30:1-20)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의 길에서 어떻게 선택해야 할 지를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가나안에서 쫓겨난다면 그것은 저주입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이 받은 저주에 대하여 기뻐하지 않습니다. 자녀들이 저주의 자리가 아니라 복의 자리에 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이 복의 자리로 회복할 수 있는 길을 말씀합니다. 그것은 항상 본질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마치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고 하였던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던 처음 사랑은 하나님이 주신 규례와 법도에 대한 순종입니다.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이 찾으시고 회복하게 하시고 더욱 번성케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법과 규례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

명령과 규례를 불순종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저주 (신 28:36-57)

신 28장은 명령과 규례를 지키는 자에 대한 복과 불순종한 자들에 대한 저주입니다. 특별히 본문은 저주에 대한 계속된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명령과 규례를 불 순종하였을 때 개인은 물론이고 공동체 역시 하나님의 심판 받음을 말씀합니다. 명령과 규례에 대한 불 순종이 가저온 저주는 나라를 망하게 됩니다. 왕은 포로가 되고, 나라는 무너지고 이방인의 신들을 섬기며 조롱거리가 됩니다. 이것은 우상숭배에 몰두하였던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실현됩니다. 각종 식물의 열매를 먹을 수 없습니다. 뿌려진 씨앗이 열매를 맺기 전에 사라집니다. 자녀들이 생겨도 함께 살 수 없습니다. 포로로 잡혀가기 때무닙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이 더욱 많아져서 주객이 전도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주신 명령과 규례를 지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 (신 26:1-19)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첫 수확을 거둘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어야 할 자세를 말씀합니다. 첫 수확을 거두고 그 열매를 제사장에게 가져가서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첫 수확은 생명의 약속입니다. 이때 하나님이 인도하여 주신 사실을 기억합니다. 이스라엘은 아람에서 방황하였습니다. 이는 야곱이 밧단 아람에서 20년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애굽에서 종 노릇하다가 출애굽한 역사를 기억하며 감사 제사를 드립니다. 감사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공적 고백입니다. 그리고 수확한 것을 레위인과 거주하는 손님들과 함께 즐거워합니다. 셋째 해 십일조는 래위인, 손님 그리고 과부와 고아들에게 나누어 주고 함께 즐거워해야 합니다. 십일조의 기능 가운데 사회적 약자를 향한 이웃 사랑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

너희 가운데서 악을 제할지라(신 22:13-30)

이스라엘이 가진 구별된 시민법 가운데 하나가 혼전 성의 순결성과 성 범죄에 대한 규례입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고리타분한 이야기로 들리는 내용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고대 근동 문화에 비추어 보아도 고리타분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세상의 문화를 분별하여 수용합니다. 악한 것은 제하여 수용합니다. 완성될 하나님 나라도 동일합니다. 부부는 서로에게 순결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누명을 쒸우는 불의한 방법으로 결혼을 무효화 시키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남자의 악한 행위는 반드시 처벌받습니다. 그러나 약혼한 여자의 순결성이 없다면 창기와 같은 행위로 보고 돌로 쳐 죽이는 일을 합니다. 간음한 여인에 대한 징계입니다. 결혼 후에 벌어지는 불륜행위도 돌로 쳐서 죽여야 합니다. ..

질서대로 (신 22:1-12)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시민법의 또다른 모습입니다. 길 잃은 소나 양을 그 주인에게 반드시 찾아주어야 합니다. 소나 양을 잃어 버린 이들의 마음을 생각할 때 찾아주는 것이 새 백성의 삶입니다. 여기에는 잃어버린 의복과 길에서 넘어진 소를 일으키는 일도 포함합니다. 이렇게 하여 한 공동체성을 지키는 일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타인의 것을 자신의 소유로 갖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것이 아니며 이웃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 됩니다. 이러한 정신이 지금도 여전히 필요합니다. 의복에 대한 규례입니다. 남녀에게 합당한 의복을 입을 것을 강조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에는 당시의 이방 문화와 혼합되는 것을 금지하는 측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혼합은 범죄의 도구가 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