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하나님의 선하심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9. 21. 06:42

대구샘터교회 수요성경 공부 모임을 위한 강의 초안을 올리오.

별 내용이 없긴 하지만 그래도 꾸준히 읽고 생각하다보면

성서의 세계가 조금이나마 열리는 게 보이지 않을까 기대하오.

장마가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여기는 비가 올 기미를 보이지 않소.

 

 

대구샘터교회 수요성경공부, 2011년 6월15일, 저녁 8시, 시편 136편

 

하나님의 선하심

 

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이 시는 유대교에서 ‘대(大) 할렐’이라고 일컬어졌으며, 이런 전통은 그리스도교 예배의 ‘키리에 엘레이송’ 기도서로 이어졌다고 한다. 이 시의 특징은 매 구절의 문장 구조가 동일하다는 것이다. ‘ ... 감사하라’와 ‘ ... 영원함이로다.’가 반복된다. 각 구절의 앞부분은 제사장이, 뒷부분은 회중들이 화답 형식으로 노래했다.

 

‘... 감사하라’는 문장은 역본에 따라서 ‘증언하여라’로 번역된다. 감사와 증언은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지켜야 할 신앙적인 태도라는 점에서 일치한다. 영혼의 깊이에서 감사할 내용을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증언하지 않을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감사한다는 것도 쉽지는 않다. 자기 수준에서 삶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불가능하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한 감사를 생각해야 한다. 그럴 때 자신의 삶 자체가 그 하나님의 일에 대한 증언으로 채워질 것이다.

 

감사해야 할 여호와가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설명이 1-26절에 이어진다. 내용을 분류하념 다음과 같다. 1-3절: 하나님의 탁월성에 대한 일반적 진술, 4-9절: 창조 사건, 10-15: 출애굽과 홍해 사건, 16-20: 광야 횡단, 21-26: 약속의 땅 가나안 정복과 그곳에서의 삶. 핵심은 창조와 구원인데, 내용적으로 135편과 일맥상통한다. 구약성서기자들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사실과 인간 역사를 이끌어 가신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하나님을 변증했다.

 

이것이 당시 이집트나 근동의 다른 종교와 구별되는 점이다. 이방 종교는 자연 자체를 숭배하는 성격이 강했다. 태양을 섬기든지 달을 섬겼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자연의 위대성을 인식하면서도 그것의 피조성을 인식했다. 역사의식도 달랐다. 근동 종교는 역사를 자연적인 순환 체계로 보았지만 이스라엘 유대교는 하나님의 주도적인 행위의 결과로 보았다. 자연과 역사를 어떻게 보는가가 여기서 관건이다.

 

신약 공동체인 그리스도교회도 구약의 이런 전통을 배제하지 않는다. 다만 그리스도론적인 시각으로 재해석, 또는 재구성하고 있을 뿐이다. 자연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에 이른다. 역사도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성된다. 그리스도론적인 변증에서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이다.

 

각 구절 뒷부분에 반복되는 ‘... 영원함이로다’ 문장의 주어는 ‘인자하심’이다. 하나님의 창조와 역사 섭리가 그의 인자하심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세상에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어긋나는 일들이 적지 않다. 도덕경은 5장에서 그것을 가리켜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고 했다. 시편 기자도 그것을 모르는 게 아니다. 큰 틀에서 그런 것도 결국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바울은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표현했다.(롬 8:28) 이런 신앙이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시련을 간단히 극복할 수 있다거나 세상의 악을 간과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시편기자가 말하려는 것은 여기서 두 가지다. 1)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을 다 아는 게 아니다. 질그릇이 토기장이의 생각을 다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사람은 시공간의 제한을 받기 때문에 우주와 역사를 전체적으로 인식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2) 하나님은 결국 선하신 분이시다. 여기서 선은 단순히 도덕적인 차원이 아니라 절대적인 생명의 차원이다. 그분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바탕에 둔 진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