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자족의 비결 (빌 4:10-23) / 김영봉목사

새벽지기1 2024. 9. 8. 07:06

해설:

편지를 마무리 하면서 사도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나 빌립보 교회는 잠시 동안 바울의 선교 사역을 돕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그들은 에바브로디도를 보내어 사도의 사역을 다시 돕기 시작했다. 사도는, 돕지 못하던 기간 중에도 그들이 자신을 생각하고 있었음을 알고 있다고 위로한다(10절). 

 

그러면서 사도는, 자신이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은 그들이 보내 준 물질 때문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11-12절). 그는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다. “자족”은 당시 스토아 학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덕목이다. 하지만 그의 자족의 능력은 인격 수양에서 온 것이 아니라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13절) 얻은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은 전능의 능력을 가졌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자족하며 살 수 있다는 뜻이다. 빌립보 교회가 자신의 사역을 도운 것에 대해 기뻐하고 감사하는 이유는 자신의 유익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이 성장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14절).

 

사도가 첫번째로 마케도니아의 여러 도시에서 전도 사역을 마치고 떠났을 때 오직 빌립보 교회만이 그를 계속 기억하고 재정적으로 지원해 주었다(15절).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할 때에도 재정적인 도움을 한두 번 보내 주었다(16절). 사도는 자신의 관심사가 물질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강조하면서, “나는 여러분의 장부에 유익한 열매가 늘어나기를 바랍니다”(17절)라고 말한다. 여기서 언급된 “장부”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늘에 쌓는 보물”(마 6:19-21)과 같은 의미다. 

 

사도는 자신에게는 모든 것이 넉넉하다고 말한다(18절). 물질적으로 넉넉해서가 아니라 자족하는 비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넉넉하다고 느낀다. 그들이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보내 준 헌금은 “아름다운 향기이며,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제물”이다. 하나님은 그 헌신에 대해 “자기의 풍성하심을 따라”(19절) 갚아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에 맞추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관대하심으로 대하신다. 이렇게 말한 다음 사도는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올린다(20절).

 

마지막으로 사도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21절). “황제의 집안에 속한 사람들”(22절)은 황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앞에서 사도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갇히게 되었다는 사실이 “온 친위대와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다”(1:13)고 적었다. 그들 중 몇 사람이 바울 사도를 통해 복음을 받아 들였다는 뜻이다. 그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23절)가 그들에게 있기를 축원하면서 편지를 마감한다.

 

묵상:

그리스-로마 시대에 대중에게 가장 인기 있던 철학이 스토아 학파였습니다. 웬만한 환경적 변화에도 표정 하나 흐트러짐 없이 견고히 서 있는 모습을 형용하는 영어 단어 ‘stoic’은 스토아 학파의 철학 사상에서 나왔습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 문화가 번성했던 다소에서 태어나 자랐고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로마 철학에도 조예가 깊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릴 때부터 자족하는 능력과 자제력을 추구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야 온전한 자족의 능력을 얻었습니다. 스토아 학파에서 가르치는 자족의 능력은 욕망을 포기함으로 얻는 것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발견한 자족의 능력은 그분 안에서 온전히 만족을 얻었기 때문에 솟아나오는 힘이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만족을 얻으면 죄 된 욕망으로부터 해방됩니다. 

 

믿음의 증거 중 하나가 자족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발견한 사람은 물질적인 환경에 의해 휘둘리지 않습니다. 가난해도 짓눌리지 않고, 부해져도 그로 인해 타락하거나 교만해지지 않습니다. 또한 자족할 능력이 있기에 자신의 물질을 나눌 수 있습니다. 자족의 능력은 돈에 대한 태도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족하는 사람은 근심과 걱정에 짓눌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런 사람은 사람 욕심을 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았기에 다른 사람의 인정에 목숨 걸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족의 능력은 바울처럼 아무 것도 가지지 않았어도 모든 것을 가진 사람처럼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동안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13절)라는 말씀이 하나님의 능력을 힘 입으면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다는 뜻으로 오용되곤 했습니다. 이 말씀의 진의는 어떤 처지에서도 자족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자신이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고후 6:10)이라고 고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