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늘 힘써야 할 일들 (빌 4:2-9) / 김영봉목사

새벽지기1 2024. 9. 7. 06:22

해설:

바울은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 주님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고 서로 화해하라고 권면한다(2절). 다음 절(3절)에서 사도는, 그 여성들이 “복음 전하는 일에 나와 함께 애쓴 사람들”이라고 소개한다. 두 여성이 무슨 일로 불화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는다. 빌립보 교인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라는 말은 그 여인들이 믿음을 떠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나의 진정한 동지여”(3절)는 빌립보 교회의 영적 지도자로 섬기고 있던 또 다른 사람을 가리킨다. 사도는 그에게 두 여성 지도자들을 화해시켜 달라고 부탁한다. 글레멘드는 빌립보 교회의 지도자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사도는 이어서 기뻐하라는 권면을 준다(4절). 기쁨은 빌립보서에서 가장 도드라진 주제다. 여기서 사도는 “항상”이라는 부사를 더하여, 기쁨이 믿는 이들의 주된 정서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것은 “주님 안에 굳건히 서”(1절) 있어야 가능하다. 

 

그는 또한 “여러분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십시오”라고 권한다(5절). “관용”은 ‘에피에케스’의 번역인데, “온유함”, “친절함”, “너그러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는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습니다”라는 뜻일 수 있고, “주님께서 가까이 계십니다“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어떤 의미이든, 주님의 임재에 예민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들에게 너그러울 수 있다.

 

주님의 임재에 예민한 사람은 모든 종류의 염려와 근심으로부터 벗어난다(6절).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아뢰기 때문이다. “기도”는 ‘프로슈케’의 번역이고, “간구”는 ‘데에시스’의 번역이다. ‘데에시스’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고, ‘프로슈케’는 찬양, 감사, 고백, 묵상 등의 여러 가지 활동을 의미한다. 

 

이 모든 기도 행위에서 중요한 것은 “감사”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머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당할 수 없는 은혜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은 언제나 응답 받는다. 그 응답은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화”(7절)다. 상황은 변한 것이 없는데 마음에는 든든한 평화가 들어차는 신비한 경험을 한다. 그것이 예수께서 약속하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요 14:27)다. “지켜 주다”로 번역된 ‘프루레오’도 역시 군사 용어로서 철통같은 방어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는 3장 1절에서와 같이 화제를 바꾸는 접속사다. 여기서 사도는 여덟 가지의 미덕(참됨, 경건함, 옳음, 순결함, 사랑스러움, 명예로움, 덕스러움, 칭찬 받을 만함)을 제시하며 “이 모든 것을 생각하십시오”(8절)라고 권한다. “생각하다”는 ‘로기조마이’의 번역인데, 마음에 새겨 두고 행동의 기준으로 삼으라는 뜻이다. 이 미덕들은 당시 그리스-로마 문화권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던 것들이다. 이 권면으로써 사도는, 믿는 이들이 사회가 기대하는 미덕들을 품어 안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사도는 자신에게서 “배운 것과 받은 것과 듣고 본 것들”(9절)을 실천하라고 권한다. 3장 17절에서도 사도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자신을 본 받으라고 했는데, 거기서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사는 것”을 배우라는 뜻이었다. 여기서는, 사회적인 기준으로 보아도 인정과 존경을 받을만큼 덕스럽게 사는 것을 말한다. 사도는 복음을 위해 헌신된 사람이었지만, 사회적인 미덕의 기준에서도 존경 받을 정도로 높은 수준에 있었다. 그렇게 할 때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이라고 격려한다. 

 

묵상:

개인적인 삶에도, 믿음의 공동체에도 시험과 환난과 풍파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성도”라는 이름을 부여 받은 우리는 그 이름에 걸맞는 존재로 변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지체로 연합하여 살아가는 믿음의 여정에 우여곡절이 없을 수 없습니다. 의견의 차이도 있고, 입장의 차이도 있습니다. 때로 그런 문제로 인해 심한 갈등 상황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는 열심은 동일하지만, 그 뜻을 분별하고 행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가 가장 애정했던 빌립보 교회도 그런 시험을 만났다면 그렇지 않을 교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도는 빌립보 교회의 몇몇 지도자들 사이에 지속되고 있던 분열과 갈등의 문제를 언급하면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영적 처방을 제시합니다. 

 

사도는 우선 “기뻐하고 감사하라”고 권합니다. 우리 삶의 여정에 어떤 문제가 일어난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혹은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에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약속된 영광스러운 미래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삶의 상황에 어렵고 힘든 일이 일어날 때면 더욱 주님 안에 든든히 서 있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 상황을 이길 수 있는 내적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힘을 얻기 위해서는 늘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삶의 상황에 어떤 문제가 일어나면 우리의 마음은 금새 염려와 근심에 휘둘립니다. 그럴 때면 잠시 멈추어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구할 것이 있으면 감사함으로 구해야 합니다.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1) 하나님 앞에 나아가 구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기 때문이고, 2) 그분의 섭리 안에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도는 구하는 것에 국한되어서는 안 됩니다. 시간을 성별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죄를 고백하며 그분의 은혜를 돌아보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주님을 가까이 할 때 주님께서도 우리에게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다른 편지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 5:16-18)라고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