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항상 기뻐하는 비밀 (빌 3:1-3) / 김영봉목사

새벽지기1 2024. 9. 3. 06:25

해설:

“끝으로”(1절)라는 접속사로써 사도는, 디모데와 에바브로디도에 대한 이야기를 끝내고 다른 주제로 전환한다. 사도는 “주 안에서 기뻐하십시오”라고 권면한다. 그는 앞에서 기뻐하라고 권한 바 있다(2:18). 그래서 사도는 “내가 같은 말을 되풀이해서 쓰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 말을 반복하는 것이 그들에게 “안전”하기 때문에 자신은 그것을 번거롭게 여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뒤이어 나오는 말을 고려하면, 바울이 말하는 “안전”은 거짓 교사들에게 속아넘어가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어서 그는 “개들을 조심하십시오”(2절)라고 경고한다. 신도들을 찾아 다니면서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요구하던 “유대주의자들”을 생각하고 한 말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에 비유했다. 회당에서 예배 드릴 때 사용했던 공동 기도문에 “우리를 개같은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기도가 포함되어 있을 정도였다. 따라서 사도가 유대주의자들을 “개들”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이 된다.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요구하는 행위에 대해 사도가 얼마나 혐오하고 있었는지를 느낄 수 있는 표현이다. 

 

그래서 사도는 “악한 일꾼”이라는 표현을 더한다. 그들이 이방인들에게 할례와 율법을 요구하는 행위는 악한 것이라는 뜻이다. “살을 잘라내는 할례”는 ‘카타토메’를 의역한 것인데, 직역하면 “자해”가 된다. 사도는 유대주의자들이 요구하는 할례가 이방인들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자해 행위라고 평가 절하한다.      

 

2절에서 사도는 “조심하십시오”라는 명령을 세번이나 반복한다. 말하는 사람으로서는 번거로운 일이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빌립보 교인들에게는 안전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유대주의자들에게 넘어가는 것이 그토록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어서 사도는 진정한 할례가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그것은 첫째, “하나님의 영으로 예배”(3절)하는 것이다. 믿는 이들에게는 성령이 내주하신다. 따라서 믿는 이들의 예배는 성령 안에서, 성령과 함께 드려지는 것이다. 둘째,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랑”하는 것이다. “자랑하다”로 번역된 ‘카우카오마이’는 “기뻐하다”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유대주의자들은 할례를 자랑하고 율법을 자랑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뻐하고 자랑한다. 그분을 통해 거듭남을 얻었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기 때문이다. 셋째, “육신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의 “육신”은 육체적인 행동 혹은 인간적은 성취를 의미한다. 

 

묵상:

사도는 빌립보서 전체 안에서 “기쁨”이라는 단어를 열 다섯 번 사용합니다. 투옥되어 있는 상황에서 쓴 편지임을 고려할 때 이것은 아주 특별한 현상입니다. 상황적으로 볼 때 기뻐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사도는 자신이 기뻐하고 있으니 빌립보 교인들에게도 기뻐하라고 요청합니다.

 

“기뻐하라”는 말은 명령이 될 수 없습니다.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뻐하라고 명령하는 것은 감정을 속이라는 뜻입니다. 감정을 속이는 것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뜻이 아닙니다. 시편에 수록된 수 많은 기도문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감정에 정직하라는 깨우침을 줍니다. 주어지는 상황 속에서 느껴지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적절하게 표출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이라고 해서 부정적인 감정을 감추고 착한 아이가 되려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는 “주 안에서 기뻐하십시오”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기뻐할 이유를 환경적인 조건에서 찾는다면 우리는 기뻐할 일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기뻐할 일이 생긴다 해도 그 기쁨은 곧 그칠 것입니다. 하지만 기뻐할 이유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는다면 그분 안에 머물러 있는 한 기쁨의 이유는 고갈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 안에 머물러 사는 한 환경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든 우리는 든든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머물러 살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으로 예배하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랑하며(기뻐하며), 육신(환경적인 조건)을 의지하지 않는”(3절)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