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바르트의 신학 이야기(31)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9. 4. 06:15

이 주권적인 힘의 성경적인 이름은 루아흐요, 프뉴마이다. 이 두 단어는 모두 움직여진 공기요 움직이는 공기, 입김, 바람 및 폭풍을 뜻하는데, 라틴어 Spiritus와 불어의 Esprit는 저 말의 본래 뜻을 잘 알려주지만 영어의 Ghost는 거의 귀신에 가까운 뜻을 나타내며 독일어 Geist는 저 단어의 본뜻이 지닌 역동적 의미를 전달하지 못한다. 우리는 이 말의 뜻을 “주님의 영이 있는 곳에는 자유가 있다.”(고후 3:17)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란 하나님 자신을 인간에게 개방시키고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향하여 개방하게 하고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위하여 자유하게 하는 하나님의 자유이다.(70쪽)

 

     한국교회는 성령을 일종의 심리적이고 주관적인 신앙체험의 대상으로만 여기고 있소. 성령 받았다는 말을 어떤 특권처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 실정이오. 그런 이들은 성령을 신학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알지도 못하고 믿지도 못할 거요. 바르트는 신학을 추동해가는 주권적 힘을 가리켜 성령이라고 말하고 있소. 루아흐는 히브리어이고, 프뉴마는 헬라어요. 그 뜻은 바람, 폭풍, 입김, 영이오. 고대인들은 바람을 영으로 생각했소. 신기하겠지만 당연한 생각이오. 지금 우리는 바람의 물리적 현상을 알고 있지만 고대인들은 전혀 알지 못했소. 보이지는 않지만 촉감으로 느낄 수 있는 바람이 때로는 따뜻하기도 하고 때로는 차갑기도 하오. 그것에 따라서 풀들이 살아나기도 하고 죽기도 하오.

 

사람도 태어나면 숨을 쉬기 시작하고 죽으면 숨을 그치오. 그런 현상의 근원을 가리켜 영이라고 말하는 것은 옳소. 그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바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을 개방시키는 능력으로 이해되오. 바르트는 고후 3:17절을 인용해서 영이 참된 자유를 허락한다고 말하오. 이는 곧 신학이 자유를 준다는 뜻이기도 하오. 루터의 신학이 중세기 교회에 자유를 주었다는 사실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소. 오늘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자유의 영을 경험하려면 신학 공부를 하는 게 좋소. 거꾸로 참된 신학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유로 인도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