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대에게 책 한권을 소개하겠소. 김동건 박사의 <현대인을 위한 신학강의>요. 우리의 영성을 위해서 좋은 책 읽기보다 우선하는 게 없다는 사실은 내가 누누이 말한 것이오. 그대도 동의하리라 믿소. 내가 따로 서평란에 모아두기 위해서 쓴 글을 아래에 다오. 그것을 오늘 매일묵상에 대신하겠소. 좋은 주일을 맞으시오.
김동건 박사의
<현대인을 위한 신학강의>
영남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김동건 박사께서 <현대인을 위한 신학강의>라는 책을 최근에 출간했다. 부제는 “12개의 주제”다. 부제대로 이 책은 현대 지성적 그리스도인들이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는, 아니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알아야 할 신앙의 내용을 12개 항목으로 다루고 있다. 핵심 키워드만 추리면 다음과 같다. 성경, 죄, 고난, 운명, 기도, 거듭남, 은사, 타종교, 은혜, 죽음, 부활, 하나님 나라. 성경으로부터 시작해서 하나님 나라로 끝나는 구도다. 여기에 망라된 주제는 그리스도교의 요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항목이 12개지만 이 책이 그것만 다루는 게 아니라 각 항목을 중심으로 훨씬 많은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 독자들이 이를 따라가기만 한다면 그리스도교 전반에 대한 신학적 토대를 얻게 될 것이다.
김동건 박사는 책 앞쪽에 “한국교회에 바칩니다.”라는 헌정사를 남겼다. 이 짤막한 헌정사에 이 책의 정신이 담겨 있다. 김 박사는 한국교회를 마음에 품고 이 책을 썼다는 말이다. 그가 마음에 품고 있는 한국교회의 실상은 무엇일까? 그것을 내가 직접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힘들지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신학이 부족한 교회가 아니겠는가. 신학을 경원시하는 교회가 아니겠는가. 믿음의 열정은 산을 옮길만하지만 그 믿음의 내용이 부실한 교회가 아니겠는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보다는 보이는 교회가 목적이 되어버린 교회가 아니겠는가. 오죽했으면 지금 한기총 해체라는 말이 나오겠는가. 김 박사는 몸은 크지만 머리가 너무 작아서, 마치 소두증에 걸린 것처럼 보이는 한국교회를 향한 깊은 연민으로 이 책을 쓰지 않았겠는가.
이 책의 제목을 구성하는 세 단어는 다음과 같다. 현대인, 신학, 강의. 여기서 ‘현대인’은 지성적 그리스도인을 암시한다. 계몽주의 이후의 시대정신 앞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일반 교회에서 영적으로 만족할만한 대답을 찾지 못해서 방황한다. 그런 방황이 길어지면서 교회를 떠나기도 한다. 오늘 한국교회에 젊은 지성인들이 발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씁쓸하지만 자타가 인정하고 있는 실상이다. 김 박사는 그들을 향해서 호소한다. 그리스도교는 단지 종교적 열광에 빠져야만 선택할 수 있는 종교가 아니라 합리적인 사유로도 얼마든지 동의할 수 있는 종교라는 사실을 외친다. 그들에게 접근하는 통로가 바로 ‘신학’이다. 신학은 전문적인 신학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대망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해야 할 영적 활동이다. 신학을 살리는 것이 곧 교회를 살리는 길이다. 신학은 교회의 기능이라는 바르트의 발언처럼 교회는 신학을 통해서 정체성을 바르게 세워나갈 수 있다. 김 박사의 이 책은 교회의 기능인 신학을 교회 현장에 뿌리내리게 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 작업을 위해서 그는 ‘강의’를 한다. 독일어로 강의는 ‘Vorlesung’이라고 한다. 청중 앞에서(vor) 읽는 것(Lesung)이다. 김 박사는 한국교회 신자들 앞에서 지금 마치 수도자처럼 신학을 읽고 있다. 읽는다는 것은 진리를 언어로 표현한다는 뜻이다.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는 하이데거의 표현처럼 김 박사의 이 책은, 즉 그의 신학 읽기는 그리스도교 영성이 거하는 집을 짓는 행위이다. 독자들께서는 그 집에 들어가 보고 싶은 생각이 나시는가? 먼저 들어가서 집 구경을 한 필자가 간단하게 느낌을 말하겠다.
우선 이 책은 친절하다. 독자들의 입장을 십분 배려한 글이다. 친절하다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이 책은 술술 읽힌다. 글을 관념적으로 써대는 신학자 유의 글이 아니라 절친한 친구나 애인에게 진심으로 전하는 속삭임처럼 들리는 글이다. 한 사람은 눈을 감고 다른 사람이 읽어줘도 똑같은 감동을 전달받을 정도로 흐름이 자연스럽고 표현이 소박하다. 신학개념을 이렇게 풀어서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은 김 박사의 신학적 영성이 농익을 대로 익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둘째, 글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따뜻하다. 신학자가 따뜻한 글을 쓰다니, 놀랍지 않은가.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뚫고 있으면서도 그는 책망하는 일이 전혀 없다. 그러면서도 할 말은 다 하고, 독자들은 다 알아차린다.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학자들은 자신을 기준으로 대상을 가차 없이 깎아내리는 글을 쓰기 쉽다. 필자도 그렇게 글을 쓴 적이 많으며, 그걸 통해서 나름으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곤 한 것 같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부성애와 모성애적인 품위를 지키고 있다. 이렇게 김 박사의 글이 친절하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교회에 애정이 많다는 뜻이리라.
김 박사의 이 책을 읽으면서 친절하다는 느낌이 든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김 박사가 신자들의 영적 상태를 일반 목회자들보다 더 깊이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가 전업 목회자 활동은 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그런데도 실제적인 신앙생활의 문제를 소상히 알고 있었다. 물론 간접적으로 신자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겠지만 평소에 자신의 신학행위를 영성의 차원에서, 즉 구도의 차원에서 수행하지 않았다면 알 수도 없고, 알았다고 하더라도 적절하게 해명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이 책의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실제적인 신앙생활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목회 현장에서 사용하기에 맞춤한 게 아닐까 생각된다.
이 책은 특징은 단순히 친절하고 목회적 영성이 풍부하다는 것만이 아니라 신학적 전문성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매력이 넘친다. 목회자라고 한다면 거기에 도달할 수 없는 신학적 깊이를 이 책이 확보하고 있다는 말이다. 136쪽 이하에 나오는 칭의와 성화에 관한 내용을 보라. 그는 칭의와 성화에 관한 루터와 칼뱅의 입장을 정확하게 구분해서 설명하고 있다. 루터는 칭의에, 칼뱅은 성화에 방점을 두고 있지만 이원론적으로 구분되는 게 아니라고 한다. 한국교회에서는 칼뱅의 입장에서 칭의 뒤에 성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강하지만, 김 박사는 칭의와 성화가 동시적인 사건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짚는다. 다만 칼뱅은 성화에 강조점을 두고 있을 뿐이다. 칭의와 성화의 이런 변증법적이고 상호 내재적 긴장에 대한 신학적 이해가 없으면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을 놓칠 수 있다. 성령의 은사에 대한 항목이나(165쪽 이하), 특히 한국사회에서 뜨거운 이슈라 할 수 있는 타종교에 대한 항목(190쪽 이하)에서 독자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타종교와의 문제에서 그리스도교의 자리를 ‘연대와 긴장’으로 보는 김 박사의 견해가 인상 깊었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면 저자나 독자들에게 실례가 될 것 같아 이만 줄여야겠다.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책값도 저렴하다. 양장본, 본문 2도 인쇄로 된 책이 단돈 12,800원이다. 독지가의 도움이 있었을까, 아니면 인세를 반납했을까, 또는 ‘대한기독교서회’에서 작심하고 한국교회를 섬긴다는 생각으로 파격적인 값을 매겼을까, 어떻게 이런 값으로 책이 나왔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김동건 박사의 노고에 다시 박수를 보낸다. <현대신학의 흐름>으로 2009년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상을 받았는데, 이 책은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해서 더 큰 공헌을 하리라 의심하지 않는다. 필자가 쓰고 싶었던 책을 김 박사가 선수를 치신 것 같아 좀 섭섭하다. 그게 다 성령의 인도하심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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