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일본 대재앙 앞에서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8. 26. 05:38

     우리 이웃 일본에서 일어난 대재앙 앞에서 일본 사람들만이 아니라 세계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망연자실에 빠졌소. 적게는 일만 명, 많게는 수만 명이 이번 재앙으로 목숨을 잃었소. 얼마나 많은 기가 막힌 사연이 거기 담겼겠소. 바로 결혼을 앞둔 이들, 오랜 병마에서 겨우 일어선 이들, 그동안 고생하다가 이제 겨우 숨을 돌린 사람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창창한 청소년들과 아이들도 다 거기에 포함된 거요. 그뿐이 아니오. 수많은 사람들이 이번에 장애를 입고, 가족을 잃었소. 그들이 앞으로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의 무게를 생각하면 깜깜하오.

 

     이번 대재앙을 신앙적으로 오도하는 이들이 나올까 염려했는데, 그런 일이 벌어졌소이다. 매스컴 보도에 따르면 우상을 섬기는 일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운운 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소. 하나님이 한국을 지켜주신 것에 감사드린다거나 생수통에 태극기 마크를 붙여서 보내자고 주장한 정치인들도 있었소. 일본이 완전히 망했다는 식으로 보도하거나 한류가 식을까 걱정하는 언론도 있었다 하오. 그들의 말은 실수가 아니오. 자신들의 세계관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오. 남의 불행을 행운의 기회로 삼으려는 심리가 인간에게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걸 저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일은 철면피한 일이오. 이런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소. 대개는 일단 이웃의 고통을 마음과 몸으로 아파하는 거요. 남의 불행에 측은지심을 느끼는 게 인간 본성이오.

 

     그대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면 세상 창조주이면서 지금도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왜 이런 일을 허락하셨는지 따져 묻고 싶을 거요. 성서기자들 중에서도 그대와 비슷한 심정을 경험한 이들이 많다오. 노아홍수, 소돔 사건, 욥 이야기가 그런 걸 다루고 있소. 복음서에도 선천성 시각장애인에 얽힌 이야기가 나오오. 무죄한 이의 고난, 이유를 알 수 없는 대재앙에 대해서 성서는 일관된 대답을 하지 않소. 가장 일반적인 대답은 죄요. 인간의 불행과 그 불행의 마지막 자리인 죽음이 죄로 인해서 왔다고 말하오. 이것을 죄 숙명주의로 오해하지 말아야 하오. 고대 성서시대 사람들은 인간 운명에 내리는 대재앙과 인간의 죄성에 대해서 깊이 생각한 것이오. 인간이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어떤 힘들이 작용한다고 본 거요. 이런 문제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성서가 모두 죄를 거론하지도 않소.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은 불행의 원인을 죄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하셨소. 여기서 하나님의 영광은 장애가 치유되는 것이오.

 

     욥기를 그대가 잘 알 거요. 욥이 당한 재앙은 인간이 살아서 당할 수 있는 최대의 것이었소. 욥의 친구들은 욥의 죄를 거론했고 욥은 자신의 결백을 말했소. 재앙의 원인이 무엇이냐에 대해서 다퉜소. 욥기는 그런 논란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말하오. 소위 신정론의 문제는 우리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넘어서는 문제라는 것이오. 그것을 억지로 해명하려는 것은 불신앙이라는 것이오. 이런 대재앙 앞에서 해야 할 일은 그것을 극복하는 것뿐이오.

 

     노아홍수 이야기는 표면적으로 볼 때 인간의 죄로 인한 대재앙을 말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것을 말하는 거요. 노아 가족은 홍수 뒤에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소. 더 이상 홍수로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이오. 이것은 두 번째 창조 이야기요. 아니 새 창조 이야기요. 노아 가족들은 번성하리라는 축복을 받소. 그리고 이것은 희망에 관한 이야기요. 비통과 허무와 절망을 불러오는 대재앙을 인간이 결국 극복할 수 있게 하겠다는 희망 말이오. 노아홍수 전승에 따르면 하나님의 약속은 무지개로 나타났다고 하오. 오늘 우리는 어디서 이 무지개를 발견할 수 있겠소? 그리스도인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구름 사이로 나타나는 이 무지개를 발견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소. 참화를 당한 일본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기를 바라오.(2011.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