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이란 하나님의 행동 안에서 말씀된 하나님의 말씀을 인식하는 학문이요, 저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는 성경의 학교에서 배우는 학문이요, 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부름받은 교회공동체에게 부과된 진리물음을 계속 탐구하는 학문이다. 오직 이런 식으로 신학은 신적인 로고스에 대한 인간적인 논리이다. 이 신학은 말씀 이외에 아무 전제도 없다. 신학의 근거와 정당성과 목적은 이 말씀이다. 비록 밖에서 볼 때 이 신학이 공중에 뜬 것 같지만. 신학의 실존 밑에 깔려 있는 힘은 저 명제들 안에 숨어 있는 힘이다.(66쪽)
바르트를 보통 ‘말씀의 신학자’라고 부르오. 말씀은 물론 하나님의 말씀이오. 독일어로 ‘Wort Gottes’라 하오. 신학의 중심을 인간의 감정과 윤리로부터 말씀으로 옮겼다는 뜻이오. 위 인용 구절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소. 하나님의 행동도 말씀으로 나타나고, 교회 공동체도 역시 말씀을 통해서 부름을 받았다고 하오. 그 말씀은 또한 신적인 로고스요. 신학은 바로 이 신적인 로고스에 대한 인간적인 논리라고도 했소.
바르트의 단적인 진술을 들어보시오. 신학은 이 말씀 이외에는 아무런 전제가 없다고 하오. 바르트는 ‘오직 성경’이라는 루터의 신학적 진술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오. 이런 태도는 거의 혁명적인 변화요. 그것을 아는 사람만이 알 수 있소. 대개는 신학과 영성의 전체적인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모르는 거요. 한국의 일반 신자들도 대개는 큰 교회 목사님이 말씀하셨으니 옳겠지, 하고 넘어가오. 위에 거론된 것처럼 말씀에 대한 ‘진리물음’(Wahrheitsfrage)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거요. 이런 맥락을 따라잡기 힘든 이유는 바르트가 위 단락의 마지막 부분에서 짚었듯이 ‘신학이 공중에 뜬 것’ 같이 보이기 때문이오. 이를 어떻게 극복하면 좋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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