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영성은 다음의 질문을 기초로 한다. 십자가 신학이란 무엇인가? 예수가 고난당하고 십자가에 처형당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 대답을 모르는 기독교인들은 없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가 고난당하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렸다는 것이 그 대답이다. 세례를 받기 위한 교리문답의 차원에서는 이렇게 대답하는 것만으로 충분할지 모르지만 실제 십자가 신학, 십자가 영성의 차원에서는 부족하다. 부족하면 결국 삶의 능력이 나타날 수 없다. 초기 기독교가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인류 구원의 길로 경험하고, 해석하고, 인식하고, 믿게 된 데에는 아주 긴 사연이 놓여 있다. 그것이 성서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서는 초기 기독교인들의 논쟁적 신앙경험을 통해서 얻어진 결과만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에서 보듯이 신약성서에 부분적으로 그런 논쟁의 흔적들이 남아 있기는 하다. 그들이 논쟁적이었다는 말은 예수에 대한 경험을 진리의 차원에서 해석했다는 뜻이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에 대한 대답도 그런 과정에서 주어졌다. 그런 과정을 무시한 채 겉으로 드러난 대답만 구구단을 외우듯이 외운다면 결코 십자가 영성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이 자리에서 그런 과정을 일일이 추적할 필요는 없다. 사순절 영성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가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예수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신 것일까? 더 근본적으로,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서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 반드시 필요했던 것일까?
복음서를 선입관 없이 읽는다면 예수가 십자가 처형을 의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연하게 눈에 들어올 것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면서 가능한대로 그런 죽음을 피하고 싶어 하셨다. 비록 순간적인 유혹에 불과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 감당해야 할 사명을 피하려고 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예수도 인간이었기에 순간적으로 죽음이 두려웠던 탓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소크라테스는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는가. 국가와 이념을 위해서 죽어야 할 때 과감하게 나서는 사람들도 제법 있다. 더구나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면 죽음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는 더욱 없다. 그런데도 성서는 예수가 십자가 죽음을 피하려고 했었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는다. 여기에는 무언가 다른 이유가 놓여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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