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사순절 영성(5)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8. 29. 05:04

     앞에서 필자는 교회력의 시작이 부활절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사순절은 바로 부활절의 씨앗이며, 부활절은 사순절의 꽃인 셈이다. 사순절을 지킨다는 것은 주님의 부활이 일어나기 전에 있었던 십자가 사건에 대한 기억이며, 그것의 육화(肉化)다. 즉 사순절의 영성은 십자가 신학이다. 십자가 신학 없이 사순절 영성은 불가능하다. 사순절을 지키기 위해서 성회 수요일에 재를 이마에 바르거나 매일 한 끼씩 금식을 한다거나 구제에 나서는 일도 필요하긴 하다. 그러나 그런 종교적 습관을 실천하기 이전에 그런 실천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십자가 신학을, 즉 십자가 영성을 모른 채 그런 경건한 습관에만 치중한다면 결국 종교적 교양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에 예배와 기도는 많지만 거기에 걸맞은 삶이 따라주지 않는 이유도 바로 근본적인 신학적 영성의 부재에 놓여 있는 게 아닐는지.

 

     필자는 위에서 영성과 신학을 거의 동의어로 사용했다. 영성은 경건의 능력이고, 신학은 단순히 이론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이런 언어사용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생각은 영성과 신학의 관계에 대한 오해에서 나온다. 이런 오해는 오직 교회 행사에만 매달리는 대중적인 교회는 물론이고, 소위 영성을 추구한다는 교회에서도 일어난다. 필자의 생각에 영성은 근본적으로 신학적이다. 아니 신학이 바로 영성이다. 신학자라고 한다면 영적이지 않은 사람이 없으며, 영적인 사람은 신학적이지 않을 수 없다. 신학자들은 이론을 세우기 전에 이미 영적인 현실을 경험한다. 그 영적인 현실에 대한 논리적 해명이 신학이다. 예를 들어, 바둑의 정석을 깊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프로 기사가 될 수 없는 것과 비슷하다. 정석이 신학이며, 프로 기사 활동이 바로 영성이다. 이런 점에서 사순절의 핵심인 고난의 영성은 바로 십자가 신학과 다를 게 없으며, 십자가 신학을 통해서 사순절 영성에 들어간다고 말해도 좋으리라. 사순절은 고난주간의 확대였다는 앞의 지적을 기억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