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2 13

신앙적 열정과 의분(삼상17:22-40) / 리민수목사

신앙적 열정과 의분(삼상17:22-40) 본분은 믿음의 용사 다윗이 골리앗을 무너뜨리기 위해 출전하는 장면이다. 즉 골리앗에 의해 이스라엘이 모욕당하는 광경을 목도한 다윗은 크게 분개했다.  다윗은 사울에게 골리앗과 싸울 수 있도록 요청하여 허락을 받은 후, 오직 물매와 매끄러운 돌 다섯 만을 가지고 골리앗에게 나아갔다. 본문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바로 다윗의 의분이다. 즉 다윗은 이방 민족인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이 하나님의 백성을 모욕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하나님께 대한 모욕으로 간주하여 의분을 가졌던 것이다(26절).  본문은 우리에게 하나님께 대한 신앙적 열정과 불의에 분연히 일어나는 의분을 가지라는 도전을 주고 있다.

"내가 바로 나다, 내가 바로 그다, 내가 바로 그 구원자"(요5:36-38) / 이금환목사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내가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것이요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며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가 보내신 이를 믿지 아니함이라"(요한복음5:36-38)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지만 세상은, 이 땅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메시아, 구원자, 그리스도로 믿어야 할 이유를 세가지 말씀하셨습니다(요5:32-40). 하나는 침례요한의 증언이고, 또 하나는 예수님의 생애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고,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 아버지의 증언이..

빛, 3월10일, 토 / 정용섭목사

주님,창세기 기자의 장엄한 진술을 듣습니다.‘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3,4)아주 오래 전 창세기 기자가 보았던 그 빛을전혀 다른 시대와 장소에 살고 있는 저도 똑같이 봅니다.그가 놀라워하던 그 빛 앞에서오늘 저도 똑같이 놀라 입을 다물 수 없습니다. 1억5천만 킬로미터 먼 곳에서초속 30만 킬로미터로 거침없이 달려8분여 만에 지구에 도달하는 저 태양빛이제가 살고 있는 하양 땅을 비롯해서지구를 골고루 비추고 있습니다.그 빛이 아니었다면 지구에 생명 출현은 불가능했으며,생명 진화도 불가능하고,당연히 인간 문명도 불가능했습니다. 태양도 있기 전에,궁창도 있기 전에,바다와 땅도 있기 전에그 어떤 것보다 존재론적으로 앞선 그 빛을하나님께서는 말씀..

못된 운전 태도, 3월9일, 금 / 정용섭목사

주님,아주 사소한 듯하지만저에게는 못된 운전 태도가 있습니다.제가 운전을 꽤나 잘하는 것처럼교만하게 운전한다는 것입니다.난폭 운전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법정 속도를 넘길 때도 많고,노란 신호등을 무시하는 경우도 있고,머뭇거리는 앞차를 보면 추월하기 일쑤입니다.그래도 아직 접촉 하고 한번 내지 않았으니제가 운전을 잘했다기보다는 운이 좋았던 게 틀림없습니다. 가장 못된 태도는미숙한 운전자들을 무시한다는 겁니다.저렇게 느리게 갈 거면 2차선으로 가야지,빨리빨리 빠져줘야 기름도 절약되고 시간도 절약될 텐데,저 친구는 깜빡이도 안 키고 끼어드네,저렇게 운전하는 걸 보니 초보 여자 운전자일 거야,불평이 그치지 않습니다. 때로는 재미있게 생각하기도 하지만때로는 짜증스러워 하면서 계속 잘난 척합니다.아무리 재촉해봐야 별..

비판의 기준, 3월8일, 목 / 정용섭목사

주님,“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는 말씀을(마 7:2)눈감고도 외울 정도로 자주 읽었으면서도저는 여전히 세상을 비판하려고만 듭니다. 작게는 나의 가족을 향해서크게는 사회를 향해서 비판의 칼을 갑니다.겉으로는 관용이 있는 것처럼 행세하지만속으로는 끊임없이 비판의 마음이휴화산의 용암처럼 분출의 기회를 노리고 있을 뿐입니다. 구약 선지자들의 전통이나 세례자 요한의 전통에 따르면개인과 사회를 건강하게 하기 위한 정당한 비판이왜 필요하지 않겠습니까.문제는 그 비판의 기준이 늘 ‘나’가 된다는 것입니다.자신의 작은 지식과 업적과 도덕성을 근거로주변을 분석하고 사람들을 대상화하면서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부단히 애를 씁니다. ..

‘나’를 넘어서야, 3월7일, 수 / 정용섭목사

주님,하나님이 홀로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라는 사실과십자가에 달리셨다가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이유일한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으며,성령만이 나를 살리는 영이라는 사실을 믿으면서도저는 여전히 ‘나’에 대한 관심이 너무 많습니다. 나와 관계된 것이 아니면도무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려고 합니다.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믿음이 적고 의심이 많은 사람입니다.자기에게 집중하는 것이바로 생명을 단절시키는 죄라는 사실을 입에 달고,시시때때로 사람들에게 선포하면서도저 스스로는 여전히 자기에게 집중하고 있으니얼마나 딱한 사람입니다. 주님,자신에 대한 관심을 내려놓을 때만,자신의 믿음마저 바닥으로 내려놓을 때만,그리고 무엇을 먹을까 하는 일상에 대한 염려로부터죽음 이후의 내 운명에 대한 것까지나에 대한 모든 염려를 내려놓..

저는 어린아이입니다, 3월6일, 화 / 정용섭목사

주님,저는 어린아이입니다.작은 일에 일희일비하며아첨하는 말에 귀가 솔깃해하고비판하는 말에 귀를 닫아버리니어린아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아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지금 눈앞에 놓인 종이 한 장, 연필 한 자루,빵 한 조각, 포도주 한 잔이어떤 궁극적인 근원과 닿아 있는지 도무지 모릅니다.언필칭 신학박사라고 하나삼위일체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증명해낼 수도 없고무죄한 자의 고난과 이유 없는 죽음을 해명할 수도 없으니어린아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마땅히 나서야 할 때 나서지 못하고나서지 말아야 할 때 종종 나섭니다.불의를 보고도 분노할 줄 모르고정의로운 일에 동참할 줄도 모릅니다.자신에게 일어나는 작은 불이익에는 민감하면서남이 당하는 엄청나게 억울한 일에는 무감각합니다. 주님 말씀하셨듯이 자신의 눈에..

뜻을 바꾸시는 하나님 (이사야서 38장) / 김영봉목사

해설:유다의 모든 성읍들이 앗시리아의 수중에 들어가고 예루살렘만 남은 상황에서 히스기야 왕이 죽을 병에 걸린다. 악성 종기 즉 피부암 종류였을 것이다(21절). 이사야는 히스기야 왕을 찾아와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이니 신변을 정리하고 죽음을 기다리라고 전한다(1절).  이 말을 듣고 히스기야는 ‘면벽기도’를 올린다(2절). 그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 왔는지를 아뢰면서 죽을 병에서 구원해 달라고 통곡하며 간청한다(3절). 뒤에 이어지는 기도문을 보면, 히스기야는 “제비처럼 학처럼 애타게 소리 지르고, 비둘기처럼 구슬피 울었”고 “눈이 멀도록 하늘을 우러러보았다”(14절)고 말한다.  그 애절한 기도에 하나님은 그의 생명을 15년 연장해 주고(5절) 예루살렘을 앗시리아 왕의 공격으로부터 구해 주겠..

외롭고 괴로우니 은혜를 베푸소서!(시편 25:16-20) / 원용일목사

외롭고 괴로우니 은혜를 베푸소서!(시편 25:16-20)16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로우니 내게 돌이키사 나에게 은혜를 베푸소서17 내 마음의 근심이 많사오니 나를 고난에서 끌어내소서18 나의 곤고와 환난을 보시고 내 모든 죄를 사하소서19 내 원수를 보소서 그들의 수가 많고 나를 심히 미워하나이다20 내 영혼을 지켜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오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외롭고 괴로울 때 무엇을 하십니까? 걱정이 많을 때 어떻게 하십니까? 너무도 많은 위기를 겪었던 다윗은 외롭고 괴로울 때, 마음의 근심이 많을 때 기도했습니다.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로우니 내게 돌이키사 나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다윗의 기도를 통해 외롭고 괴로울 때 무엇을 해야 할지, 그러면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 확인할 수..

힘이 들거든 하나님께 아뢰라. / 봉민근

힘이 들거든 하나님께 아뢰라.      글쓴이/봉민근하나님을 믿는다면 나는 안된다 못한다 할 수 없다는 말을 하지 마라.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것이 없다 하신다.슬픔도 아픔도 주님과 함께 나누는 습관이 필요하다.믿음은 절대적인 것이다.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그 속에서 만족을 누리는 것이다.주시면 좋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믿는 자의 태도가 아니다.믿음은 확신이다.염려는 믿음이 아니다.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나는 믿을 수 있어야 한다.믿음은 무조건적이다.믿음에 조건을 거는 것은 하나님과 거래하려는 태도다.하나님을 거래하는 사업가로 만들지 마라.하나님은 내 인생에 보호자요 인도자시다.힘이 들거든 하나님께 아뢰라.괴로움도 슬픔도 하나님 앞에 털어놓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다.인생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