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12절부터 편지의 몸말이 시작된다. “내게 일어난 일”(12절)은 감옥에 갇힌 일을 가리킨다. 그 사건이 알려지면 많은 신도들이 전도의 문이 막혔다고 생각하고 낙심할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사도는 자신의 투옥이 “도리어 복음을 전파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는 말로 그들을 안심시킨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감옥에 갇혔다”(13절)는 말은 그가 그리스도 예수께 대한 믿음과 헌신 때문에 감옥에 갇혔다는 뜻이다. 그의 투옥은 그가 얼마나 그리스도께 헌신된 사람인지를 반증해 주는 사건이 되었다. “친위대”(프라이토리온)는 식민지에 파견된 황제의 직속 부대를 가리킨다. 그의 투옥 사건은 “친위대와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저 사람이 투옥을 감수할 정도로 자신을 희생하며 전하려는 예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저 사람은 왜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는 일에 목숨을 걸었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것이 복음 전파에 유익이 되었다는 뜻이다.
그뿐 아니라, 사도는 자신이 투옥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겁 없이 더욱 담대하게”(14절)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고 말한다. 그들은 “주님 안에 있는 형제자매들”이다. 믿음이 약한 사람들은 바울의 투옥 소식에 두려워 떨며 뒷걸음쳤지만, 주님 안에 든든히 서 있던 신도들은 오히려 자극을 받았다. 자신들이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도가 구금 되었으니, 자신들이라도 그가 했던 일을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사도의 태도를 보며 자신들이 믿고 전하는 복음에 대해 더욱 확신을 가졌을 것이다. “과연, 이 복음은 목숨을 바칠만한 것이구나!”라는 확신이 그들로 하여금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했다. 그들은 바울이 진실한 사도임을 알아보고 “좋은 뜻으로”(15절) 그리고 “사랑으로”(16절) 복음을 전했다.
하지만 그의 투옥을 기뻐하면서 “시기하고 다투면서”(15절) 더욱 열심을 내어 전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투면서”는 “경쟁심으로”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다. 그들은 3장 2-4절에 언급된 “유대주의자들”(이방인들도 예수에 대한 믿음에 더하여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친 바울 사도의 전도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바울이 투옥 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그들은 더욱 열심을 내어 전도했다. 그것은 시기심과 경쟁심에서 나온 열심이었고, 바울을 낙심하게 하려는 의도에서 나왔다(17절).
사도는, 자신에게는 그들과 경쟁하려는 의도가 없으며, 불순한 동기와 목적으로 행해진 일이라 해도 그리스도만 전해지면 자신은 기뻐할 것이라고 말한다(18절). 이 말로써 사도는 불순한 동기로 복음 전하는 것을 두둔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불순한 전도 행위에 대한 은밀한 비판이다. 바울은 어느 누구보다 동기의 순수성을 강조했다.
묵상:
그리스-로마 사회의 통념은 사고, 불행, 실패, 질병 등을 그 사람의 업보로 보고, 평안, 성공, 승리, 건강 등을 그 사람의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섬김, 헌신, 희생 같은 것은 미덕으로 간주되지 않았습니다. 강해지고 높아지고 커져서 많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누리는 것이 미덕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이러한 영향 때문에 믿는 이들도 사고나 불행이나 실패나 질병을 불신앙 혹은 죄로 인해 받는 보응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믿는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 입어 만사형통 하고 승승장구 하며 무병장수 해야 한다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바울이 복음 전하는 일로 인해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를 믿고 의지했던 이들 중에는 “능력의 사도”인 바울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로 인해 혼란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과연, 그가 전한 그리스도 예수가 진짜인가?” 혹은 “성령의 능력 안에 있다면 왜 저런 불행이 일어나는가?” 하고 질문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바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해 더욱 용기를 내어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을 위해,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목숨까지 아끼지 않는 바울의 열심을 보고 “사도가 전하는 복음은 진짜구나! 사도에게는 그리스도가 목숨보다 더 중요하구나!” 하고 생각 했기 때문입니다. 그를 체포하고 감금했던 황제 친위대들도 “저 사람이 목숨까지 바치려는 그리스도 예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하고 질문했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 그들로 하여금 복음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열게 만들었습니다.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동일한 사건을 두고 정반대의 해석을 한 것입니다. 그 차이는 “주님 안에 있느냐?”(14절)에 있습니다. 믿는다고 하지만 주님 안에 머물러 살지 않으면 세속적인 사고 방식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주님 안으로 온전히 자리를 옮기지 않으면 사탄의 지배력 아래에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온전히 믿는다는 것은 포도나무 가지가 줄기에 붙어 있는 것처럼 항상, 늘 주님 안에 머물러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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