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그대는 지금 어디에 있소?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8. 19. 06:26

 그대는 지금 어디에 있소? 뭐 하고 있소? 밥을 먹고 있을지도, 책을 읽고 있을지도, 티브이 앞에 앉아 있을지도,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친구를 만나거나 영화관에 들어갔을지도, 산을 타거나 테니스장에 나가 있을지도, 물건을 팔거나 자동차를 조립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소. 또는 큰 병에 걸려 누워있거나 수술을 앞두거나 회복 중에 있을지도, 이혼하기로 합의하거나 부도를 맞아 해결하려고 동분서주하는지도 모르겠소. 그대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소?

 

     이것을 잊지 마시오. 지금 우리는 모두 지구의 껍질에 붙어서 무언가를 하면서 살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오. 우리에게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게 중요하오. 사람들은 그것에 너무 큰 가치를 부여하려고 기를 쓰고 있소. 판사의 일은 가치가 있고, 피고의 일은 가치가 없다고 말이오. 가정부를 부리면서 헬스장과 피부미용실에 가서 몸을 관리하는 사람의 삶은 가치가 있고, 폐지를 리어카에 싣고 가는 어떤 사람의 삶은 가치가 없다고 말이오.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소. 그런 가치 판단 자체를 부정할 수도 없소. 필요하기도 하오. 그러나 더 궁극적인 자리에서 보면 모든 것이 다 지구 안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을 뿐이오. 의사나 환자나, 기업가나 종업원이나 모두 무언가에 속해 있을 뿐이오. 그게 어떻다는 말이냐, 하고 묻지 않기를 바라오. 이게 무슨 뜻인지 그대가 알고 있기를 기대하오. 노파심으로 좀더 설명하리다.

 

     개미들을 보시오. 그들은 각자 맡은 일이 따로 있소. 일개미, 병정개미, 여왕개미도 있소. 여왕개미는 일을 하지 않고 알만 낳소. 그들의 일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우리가 볼 때는 그 차이라는 것이 미미하오. 우리 인간의 삶도 그와 비슷하오. 거기서 거기요. 그 차이에 마음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그것에 마음을 두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소. 후자의 삶이 바람직하지만, 그게 쉽지 않소. 삶에 대한 생각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이건 불가능하오. 이런 장면을 그려보시오. 카페 안에 사랑하는 두 사람이 마주 않아서 따끈한 차를 마시며 담소하고 있소. 이보다 더 행복한 순간이 어디 있겠소. 바깥에서는 어떤 사람이 눈을 쓸고 있소. 이 사람은 청소로 일당을 벌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이오. 카페 안에서 차를 마시는 것과 밖에서 눈을 쓰는 일에 차이가 없소. 그것도 모두 우리 앞에서 일어나는 ‘무언가’의 일들이오. 다 사건이오.

 

     지금 그대는 어디서 무엇을 하오? 남들처럼 잘 살아보려고 애를 쓰고 있으시오? 그렇게 하도록 하시오. 그대가 별 어려움 없이 살기를 바라겠소. 그러나 이것만은 잊지 마시오. 사람들이 행복한 조건으로 내세우는 것들이 사실은 별 게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오. 그러니 다른 이들의 삶을 부러워하지 말고 그대의 삶을 씩씩하게 살아가시오. 기회가 되는 대로 그런 삶을 나누며 살아보시오. 가능하면 그렇게 하시오. 안 되는 걸 억지로 하지는 마시오. 오늘밤에도 별은 저렇게 빛나고 있소. (2011년 2월15일,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