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바르트 신학 이야기(15) / 정용섭목사

새벽지기1 2024. 8. 18. 06:19

(3) 신학의 자리는 성경 증인의 자리보다 높지 않다. 신학자는 성경의 증인들보다 더 훌륭한 천문학, 지리학, 동물학, 심리학, 생리학 등을 구사할 있다. 그러나 신학자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이 증인들보다 더 잘 아는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신학자는 예언자와 사도들을 동료교수처럼 여긴 나머지 이들에게 말을 하기도 하고 말을 피할 수도 있을 만큼 훌륭한 사람이 아니다.

또한 신학자는 고등학교 선생처럼 저들(예언자와 사도)의 어깨너머로 엿보면서 저들의 노트를 교정케 하고 좋은 점수이든 나쁜 점수이든 점수 주는 일을 할 수 있는 자격도 없다. 따라서 가장 형편없고 희귀하며 단순하고 알려지지 않는 성경 증인이라도 가장 경건하고 학구적이고 예리한 현대 신학자들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성경의 증인들은 그들의 특수한 시각에서 특수한 양식으로 계시적인 말씀에 대해서 생각했고 말했으며 기록하였고 이 말씀과 직접적인 충돌을 통하여 행동했다. 훗날의 모든 교회공동체는 물론 그 어떤 신학도 결코 하나님 말씀과의 직접적인 대면을 하는 것은 아니다.(5)

 

     바르트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신학자요. 보는 관점에 따라서 바르트보다는 다른 신학자들을 더 높이 평가할 수도 있지만 바르트가 신학의 물꼬를 돌려놓았다는 사실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오. 이런 역할을 한 이들을 가리켜 대가라고 하오. 바르트는 20세기의 루터나 칼뱅이라고 보면 되오. 신학 경향은 칼뱅에 가깝소. 신학의 대가가 신학자들을 경고하고 있소. 자신들이 성서 기자들보다 뛰어나거나 아니면 비슷한 유가 되는 것처럼 건방을 떨지 말라는 것이오. 성서기자들의 자리는 독보적이라는 뜻이오. 그대는 바르트의 진술이 좀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오? 성서기자들도 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아니냐고 말이오. 물론 그렇소. 우리와 다를 게 하나도 없소. 늘 불안하고 인식의 한계를 보이오. 성격적인 결함을 보이기도 하오. 성서에 그런 흔적이 나타나오. 그렇지만 그들은 특별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었소. 그들은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어떤 경험을 한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