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저 <설교란 무엇인가> 출간으로 몇 군데 인터뷰를 했소. 연합신문, 한국일보, 주간기독교, 홍성사요. ‘뉴스앤조이’와는 14일 오후에 인터뷰 약속이 잡혀 있소. 주간 기독교라는 월간지와는 전자메일로 인터뷰를 했는데, 아래의 내용이오. 혹시 내 책을 읽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 그대에게 다시 보이는 거요.
1. <설교란 무엇인가>를 쓰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 이 책은 지난 수년 동안 기독교 잡지에 기고한 글과 설교를 주제로 한 강연회 원고를 모은 것입니다. 처음부터 책으로 묶어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집필 동기가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는 정리할 수 있습니다. 설교비평 이후로 많은 분들이 ‘당신은 어떻게 설교하는지 궁금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런 궁금증에 나름으로 대답하려는 것이 바로 이 책의 집필 동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2. 설교에 관한 책은 많이 출간되었습니다. 그리고 정 목사님께서도 일전에 <속 빈 설교 꽉 찬 설교>, <설교와 선동 사이에서>, <설교의 절망과 희망> 등 설교에 관한 다수의 책을 집필하신 바 있고요. 그런데도 이번에 설교에 관한 책을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요. 또 기존의 설교 서적과 차별점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 앞의 질문과 비슷한 질문이군요. 지금까지 설교에 관한 문제는 주로 설교학을 전공한 분들에 의해서 제기되고 방향이 제시되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분들의 관점은 설교 방법론에 치우쳤습니다. 스토리텔링, 귀납법 설교, 강해설교로 이름이 붙여진 것들이 다 그렇습니다. 심지어 스피치 방법까지 제시되곤 합니다. 이런 접근 방식이 근본적으로 놓친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서텍스트의 해석 문제입니다. 성서텍스트를 해석해야 한다는 사실을 많은 설교자들이 놓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서의 놀라운 세계를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에만 치우쳐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고 성서의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전한다는 것이 다른 설교 관련 책들과 구별되는 점입니다.
3. 설교에 관한 비평서의 모습을 띄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설교 현실 중 어떤 문제점에 착안하여 설교 비평을 하게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설교자들이 청중에게 일방적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일종의 포퓰리즘입니다. 설교자들이 마치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처럼 설교를 합니다. 교장선생님은 아이들의 세계를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의 눈높이에서 아이들을 훈계하려고 듭니다. 한국교회의 설교가 얼마나 계몽적인 방식으로 흘러가는지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여기에는 청중들의 책임도 큽니다. 그들은 재미있는 이야기,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어야만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라도 생각하게 만드는 설교에 대해서는 ‘어렵다’는 반응이 튀어나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지성인 그리스도인들이 교회에 남아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 한국 개신교회가 양적으로도 쇠태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에 대한 반증입니다.
4. 한국 교회 강단에 살아있는 설교가 갈급한 상황이라고 하셨습니다. 목사님께서 생각하시는 살아있는 설교란 어떤 것인지요.
- 가장 교과서적인 대답은 신자들에게 ‘영적인 감동’을 주는 설교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감동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설명이 필요합니다.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는 영적인 감동을 감정적인 차원으로만 생각하면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영적이라는 말은 이성적이라는 말과 비슷합니다. 따라서 영적인 설교는 청중들로 하여금 자신의 운명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결단하고 선택하게 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설교의 반응을 너무 즉각적인 것으로 간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설교가 끝나자마자 신자들에게 영적인 감동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설교자들과 청중들이 원하는 것은 전자의 경우이겠지만 실제로는 후자가 더 바람직합니다. 삶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야 영적인 이해도 깊어지는 것이니까요.
5. 설교를 위해서는 성서 해석이 필요하며, 설교자가 성서의 깊은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인문학을 언급하셨습니다. 성서 해석에서 인문학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이유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 성서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역사 안에서 출현한 문서입니다. 하나님이 공중에서 말씀하시는 게 아니라 역사에서 말씀하신다는 뜻입니다. 구약은 이스라엘의 역사가 그 배경이고, 신약은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역사입니다. 이런 역사를 읽어야만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역사를 읽는 능력이 인문학입니다. 인문학적 소양이 없으면 성서는 공중에 뜬 문서가 되고 맙니다. 인문학으로 성서가 상대화된다거나 기독교 권위가 떨어진다는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동설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성서의 권위가 떨어지지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6. 성서적으로, 신학적으로 옳은 설교를 위해서 설교자가 지양해야 할 점과 지향해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 지양해야 할 점은 설교자가 청중들에게 은혜를 끼쳐야겠다는 조바심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설교자가 그런 유혹을 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긴 합니다. 좋은 쪽으로 보면 영혼 구원에 대한 열망이 강한 것이기도 하구요. 설교자가 성령 의존적인 자리에 서고 싶다면 그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지향해야 할 점은 설교의 방향을 자기 자신에게 두라는 것입니다. 설교자도 말씀을 들어야 할 사람입니다. 설교는 설교자가 아니라 성서 자체가 하는 것이고, 또한 성령이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관념적인 것처럼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7. 설교를 다루고 있어 목회자 같은 설교자를 대상으로 한 책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오히려 청중인 일반 크리스천들에게도 많은 깨달음을 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의도하신 바가 맞는지요. 그렇다면, 청중들은 설교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세요.
- 청중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기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 수준으로만 설교를 대합니다. 예를 들어, 뽕짝 노래만 듣고 부르던 사람이 갑자기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어렵게 느껴지는 건 당연합니다. 성서의 근본에 대한 해명보다는 솔깃한 예화를 듣고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신자들도 많습니다. 이걸 극복하는 건 설교자나 신자나 모두 어려운 일입니다. 어쨌든지 책임은 청중들보다는 결국 설교자에게 있다고 봐야지요.
8. 특별히 책을 통해 강조하고자 하신 점이 있으신지요. 또 이 책을 읽을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강조하고 싶었던 점은 설교자들이 하나님 말씀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다 아는 것처럼 설교할 게 아니라 알면 알수록 모른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겠지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좋은 책을 많이 읽으라는 것입니다. 독서는 설교자나 일반 신자가 성서의 놀라운 세계로 들어가는데 결정적인 안내 역할을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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